[re] 사 랑
작성자명 [서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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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11.05
저는 원혜영님의 삶의 간증을 은혜롭게 듣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혜영님께서 나누어주시는 은혜가 조금 감해질수도 있는 부분을 보면서
감히 몇자 보태고자 합니다.
그건 불교에 관한 부분인데요.
불교.
말씀하신대로 “열반”이 궁극적 목적인 것 같아요.
열반은 해탈의 상태라지요? 그리고 해탈은 자아 -집착과 탐욕으로 가득찬-에 구속되지 않은 상태, 나 중심에서 ‘진리’ 중심으로 내가 바뀌는 상태, 그래서 ‘진리’와 진정으로 하나가돼 진리 외에는 그 무엇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상태, 하여 어떤 상황에도 평안과 자유함을 누릴 수 있는 상태...그런 상태가 해탈이고 열반이지 않나싶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 기독교가 말하는 샬롬이나 평안, 또는 조금 너그럽게 해석한다면 구원의 상태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고, 따라서 불교의 궁극적 목표로서 해탈이나 열반 자체가 비판을 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보여져요.
우리와 그들이 다른 것은 그들의 표현대로 하자면 “열반”에 이르는 방법에 있다고 봅니다.
그들은 “열반”에 스스로의 힘으로 이를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그래서 고행이나 수행이 강조되구요). 우리는 절대로, 절대로 스스로의 힘으로 궁극적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보지요. 불교식의 수많은 수행과 고행이 가져다 주는 것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의 탄식일 뿐, 목표에 이르게 할 수는 없다고 보는 것이지요.
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느냐의 이유에서 또한 기독교과 불교가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고 봅니다. 기독교에서 인간은 “타락한 존재”이기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아무리 몸부림쳐도 죄를 벗어날 수 없다고 보지요(우리들의 날마다의 큐티가 이것을 입증해주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중보자로서 예수가 필요한 것이고요. 그리스도를 모르면, 구원에 이르는 길의 하나가 스스로에게 의존하는 것 아니겠어요. 스스로가 매일 자기를 죽이고 내던짐으로서 구원에 이르는 것--불교가 택한 길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본다면 불교도 기독교가 이르고자 하는 목표에 도달하고자 하며, 방법에서도 자아를 죽이는 것, 내던져버리는 것의 방법을 택하고 있고... 이런 면에서는 우리 기독교와 비슷하다고 봅니다. 그들에게도 ‘진리’가 있다는 것입니다.(그래서 무작정 불교를 싸잡아 나쁘다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보아요). 그러나 그들에게 인간은 선하며, 중보자로서 예수그리스도가 없다는 것(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는 것) - 이점이 치명적이며, 그럼으로 그들의 진리와 우리의 진리는 결정적인 데서 다를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과문한 제가 감히 이런 강의조의 말씀을 길게 늘어놓는 것은 혜영님께서 “동기나 목표 자체가 이미 너무나 사악해서...”라고 불교를 너무 쉽게 일반화해버림으로 혜영님의 간증을 통해 나온 은혜의 영향력이 조금이나마 감해지지않을까 하는 노파심때문입니다. (또 간혹 제 주위에서 보면 “불교=사악하기만 한 종교”라고 너무 단순화해서 말함으로, 오히려 기독교에 부정적인 인상을 심는 경우를 보아서요)
제 말이 건방진 말이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혜영님의 진정한 의도를 잘 알고 있기에 저의 이 리플이 혜영님을 비판하는 것으로 보여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