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열 집사님의 큐티를 읽으면서... 보열집사님께
작성자명 [김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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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11.03
안녕하세요 김보열 집사님,
저는 독일에서 살고 있는 김경희라고 합니다.
우리들 교회 홈을 가끔 들어올때마다 집사님의 글을 읽었고 집사님이 겪고 계시는 어려움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이해가 안되었습니다.
전혀 살고 싶지 않다고 하는 남자,
그렇게 집사님의 마음을 아프게까지 하면서, 아니 지금까지 함께 살아왔고 자기 아이의 엄마인 집사님에게 인간 존중은 막론하고 땅 바닥까지 집사님의 자존심을 눌러버리는 그 남자를...
가정을 준수하기 위해 이혼이라고 하는것을 막으려는 집사님을
그리고 하나님께 메달려 절규하는 집사님의 기도를...
오랫동안 독일 숲을 걸었습니다.
집사님을 생각했고 기도했습니다.
집사님의 간절함을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저에게 집사님의 간절함이 어디서 온것인지 주님께서 느끼게 하셨습니다
아이들 아빠의 영혼에 대한 조건없는 궁휼함과 사랑의 한결함이 마치 수로보니게 여인(마15,21-28)을 보는것 같았습니다.
자신을 개 보다 더 낮게 취급하셨던 주님의 애꿎은 시험에도 불구하고 딸의 고침을 위한 간절함과 믿음앞에 주님역시 손을 들수 밖에 없었던 그여인의 믿음이 집사님의 믿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집사님처럼 그런 간절함이나 궁휼함이 저에겐 없습니다.
1987년 독일로 유학을 왔고 이곳에서 공부를 하다 독일인을 만나 결혼을 했고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공부가 중요했고 확실한 자신도 없어서 아이를 갖지 않으려다 결혼 한지 육년만에 아들을 갖게 되었고 아이때문에 제가 소원했던 박사과정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나름데로 열심히 살았고 감사하게도 이곳에서 한국으로 갈 독일의 커다란 회사들의 메니저들에게 세미나와 통번역을 하면서 사람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아이의 아빠는 아주 가정적이었고 절 많이 사랑해주는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랑받는것에만 익숙했던 제 자존심때문에 어쩜 그 사람은 외로왔는지도 모르지만 어떻든 결혼한지 16년이 다 되어갈쯤 그사람은 절 배신했습니다.
저희 가족과 아주 가깝게 지내던 친구 가족의 아내와 거짓이 시작되었고 6개월쯤 전 그사람에게 저와 그여자중 선택해라 했고 그여자는 자기의 영혼의 친구 seelenverwandt 라며 포기못한다고 하기에 제가 포기했습니다.
그여자도 그여자의 남편도 모두 의사였는데 그여자의 남편이 병원을 차리게 되면서 그 둘의 관계가 소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자는 제가 싫어하는 이벤트를 만들어서 제 남편과 함께 할수 있는 기회들을 만들었고 장님처럼 전 두 사람을 믿었습니다.
늘 말씀과 함께 기도생활을 하면서 독일교회에서 주일학교, 가족예배와 성서모임을 인도했고 시간나는데로 독일 양로원에 가서 예배 피아노반주를 하며 참으로 힘든 독일 생활이었지만 나름데로 감사하면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살아왔습니다.
제 가족이 깨질것을 2005년 1월 3일 독일수도원에서 알려주셨습니다.
손에 쟁귀를 보고 뒤를 돌아보는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제자가 될수 없다고...
그동안 아름답게 쌓아왔고 다듬었던 내 가족의 정원이 그냥 다 파괴되는것이 두렵고 홀로 이곳 외국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찌 막막했습니다.
다시 예전 한국에서 하려고 했던 신학을 다시 시작했습니다.(한국에서는 독문학을 전공)
2005년 독일 나이 43세 였고 독일 대학에서 입학허가서를 받는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천 오백명의 응시자중 125명을 선택하는 학교에서 신학과의 23명 정원에 입학자리를 받게 되었고 지금까지 공부를 해서 내년 2월에 공부가 마치게됩니다.
공부때문에 다른 도시로 이사를 해야 할때 아들 다니엘의 나이가 11세가 되었는데 제발 자기를 데려가주지 말것을 부탁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학교와 친구 그리고 마마가 예쁘게 꾸며준 자기 방에서 있게 해달고 했습니다.
다니엘을 내려놔야만 했습니다.
제 삶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결단이었던것은 바로 아이였는데 아이를 사랑하는것이 제 욕심이 아니라 아이가 원하는것임을 알았습니다.
임신했을때도 아이를 낳아서도 아이를 위해서 찬송과 기도를 놓치않았습니다.
학교를 갈때도 늘 손을 머리에 얹고 기도를 해줬습니다.
아이를 위해서 거의 지금까지 손으로 열을 셀수 없을정도로 늘 언제나 따스한 음식을 요리했고 모든 제 Termin을 다니엘위해 맞추어서 일을 했습니다.
제가 공부를 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전적으로 양육해주실것을 약속했습니다.
함께 살던 곳에서 이곳으로 이사를 하기 며칠전 다니엘은 제게 놀라운 말로 위로를 했습니다.
#8222;마마와 나는 한 끈이라고. 서로가 가장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가장 멋진일을 이루어보자고…“
제가 사는곳을 방문했다 다시 아빠가 사는곳으로 돌아가는 아이를 기차를 태워보낼때 기차가 사라질때까지 눈물을 흘리며 (때론 큰소리로 울음이 터질까 입을 막음) 살아왔던 지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런 제 아들이 지난주에 독일나이로 15살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고 키가 186cm 로 자랐습니다.
생일을 맞이하는 밤 12시에 잠시 사라지더니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사랑도 많이 받나봅니다. 나름데로 공부도 열심히 잘하고 운동도, 그렇게 연습하기 싫어했던 트롬펫도 , 그리고 어렸을적 피아노를 배우라고 권했지만 듣지 않았던 피아노 공부도 스스로 연습을 해서 피아노도 잘칩니다.(제주변에 음악가들이 많아 보이지 않게 영향을 받은것 같음)
이사를 하기전 하나님께서는 제게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칠천명이 널 위해 준비되어있고 그 사람들이 널 도울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다시 독일어로 공부를 하는것이 쉽진 않았고 독일 학교와 교회에서 실습까지 병행하는것은 더욱 더 어려웠습니다.
거의 새벽 3/4시까지 공부를 합니다.
이렇게해서 여기까지 왔고 지금 마지막 학기를 남기고 졸업논문을 쓰고 있습니다.
다니엘아빠는 나에게 비겁하게도 거짓을 하면서 자신을 팔아야 할정도로 그녀를 사랑했지만 제가 떠나고 나서 그 여자친구와는 헤어지고 지금은 보통 우정사이처럼 지낸다고 합니다.
그녀는 제가 믿었던 친구였지만 아직도 제마음에 완전히 용서하기 힘든 사람으로 남습니다.
그녀의 아들과 다니엘은 예전과 다름없이 변함없는 친구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집의 늦동이 막내딸의 세례 대모가 바로 저였는데 그집 아이들 모두는 자기엄마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와 헤어지는것이 무척 두려웠고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지금 아무일도 없었던것 처럼 잘 산다고 합니다.
다니엘 아빠는 현재 다른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고 홀로 다니엘을 잘 키우고 살고 있습니다.
그사람은 아이에게 늘 언제나100점 아빠였고 지금도 변함없이 좋은 아빠입니다.
늘 저 때문에 교회에 다니고 교회 장로를 한다고 불평이었던 사람이 아직도 교회를 다니면서 장로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누나도 독일교회 목사로 이태리 밀라노에서 사역하고 있음)
독일의 가정법은 별거나 이혼시 모든것이 자녀의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남편이나 아내의 윤리적 도덕적 책임을 절대로 묻지 않고 일단 경제적으로 힘있는 사람이 경제적으로 불리한 사람에게 아이의 양육비와 함께 경제적 안정이 이루어질때까지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일단 이혼을 하게 될경우 이런 제도때문에 독일에서는 일단 경제적 책임을 졌던 사람뿐 아니라 모두가 어려움을 겪게됩니다.
제 의료보험 문제때문에 이혼하는데 문제가 생기어 지금까지 별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사람은 한번도 지금까지 제게 이혼을 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별거에 들어가면서 양쪽 변호사들은 제가 공부하는 동안에 매달 일정금액을 지불하도록 했습니다.
그 사람을 처음엔 용서하기가 힘들었고 더우기 받아들이기는 더욱 그랬습니다.
지난해 가을 수도원에 가서 제마음에 내려놓기 힘든것 모든것을 비우고 왔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의 아빠이기에 행복하게 잘되기를 기도하게 되었지만 아직도 그 사람에 대한 궁휼함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그 사람을 나 만큼 사랑하실텐데 왜 내가 그사람의영혼에 긍휼함을 가져야하는지…)
전 빨리 이혼을 하길 원합니다.
주변에서는 모든 공부가 끝나고 자리 잡을때까지 먼저 서둘지 말라고 합니다.
다시 함께 산다고 하는것을 상상할수 없을정도로 난 그 사람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다 깨졌고 평생 마음에 지워지질 않을 상처를 붙잡고 그 사람과 함께 평생 살아가는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집니다.
인간은 신뢰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성 어거스틴도 마틴 루터도 주장했던 인간의 이성역시 하나님을 통해서 선물 받았기에 반드시 우리가 진 실수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역시 홀로 있는 시간을 통해서 그 사람의 실수만을 꺼내어 가슴 아파한것이 아니라 제 실수와 잘못 또한 하나님앞에 거슬렸던 모든 죄악들을 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0년이 넘게 독일에 살아서 독일적 사고를 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생각하지만 일단 기차가 떠났다면 똑 같은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것이 아니라 다른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려야 하는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내 의지데로 되는것이 아닌데다 더구나 나와 더이상 살기 싫어 다른 사람을 사랑해서 떠난 사람의 마음을 붙잡는것은 나뿐만 아니라 모두를 더 비참하게 만들기에 그냥 하나님 붙잡고 혼자 살면 살았지...
그 사람을 떠나보내는것이 처음엔 고통스럽지만 평생 고통을 안고 사느니 놓는것이 더 지혜로운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인간의 마음만은 스스로 선택할수 있는 자유를 주셨기에 환경에 변화를 주실지언정 인간의 마음변화에는 기다리시기만 하시는 분 같습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은 돌을 떡으로 만드는것에 있는것이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시는 그 분의 기다림과 사랑을 우릴 통해 이루어가시는데 있습니다.
비록 지금까지 혼자 사는것이 힘들긴 했지만 제 나이 40중반을 넘기면서 가장 아름다왔고 하나님과 가장 긴밀한 시간이 바로 이 광야의 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광야에는 아무것도 의지할것이 없기때문입니다. (요르단에 다녀온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참으로 광야가 어떤것인가 새삼 깨닫게 됨)
이 홀로의 시간속에서 세상에 상처를 받고 고통을 당하는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절 아낌없이 사랑해주고 도와주는 엘리야의 칠천명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찬양조차 할수 없었던 시간들이 지나고 이젠 홀로 깊은 숲속을 걸으며 숲의 나무들과 꽃들의 쉼, 파란 하늘의 맑음, 끝없이 이어지는 푸른 벌판의 넓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찬양할수 있는 시간들을 느낍니다.
올 12월 15일에 졸업논문 제출과 함께 이곳 독일주 교회본부에 이력서를 내게 됩니다.
제가 사역할 도시의 교회와 학교를 전혀 알지 못하지만 제가 아팠던 상처를 치료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상처받은 이들에게 저 역시 나눠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물질의 풍요로움속에서 외롭고 상처가 깊은 독일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제 가정이 파괴 되지 않았더라면 전 늘 여러나라로 여행을 하러 다니거나 그냥 수도원에서 경건생활을 하며 살듯 내 가정, 내가 소중한 사람들만을 위해서 살았을찌 모릅니다.
비록 제 가족은 깨어졌지만 제가 이렇게 혼자 살다보니 가족의 개념이 바뀌어서 내 주변사람이 참으로 내 가족이 될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을 나눠주는 그 곳이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감스럽게도 가장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는곳이 다름아닌 우리가 서로 사랑하겠다고 다짐했던 그 가족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 이야기가 길었지요 집사님?
전 집사님의 간절함이 꼭 이루어지길 기도 드리겠습니다.
집사님의 간절함이 집착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담아있음에 존경하고 싶습니다.
집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이혼하고픈 제 마음에 집사님의 간절함을 담아보고픈 마음이 듭니다.
꼭 주님의 동행하심이 집사님과 집사님 가정에 함께 하시길…
독일에서 경희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