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작성자명 [주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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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10.30
시편 63 : 1-11
소년은 교실 문을 뻥 차고 나와
푸른 초원위에 누워 밤하늘 빛나는 별들을 올려다 본다...
- 어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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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교길,
흔들리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고 길에
배우 신성일씨의 아내 엄앵란 여사께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시어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걸 듣고 있었다.
인생은 교과서가 아니예요,
사람이 말이야 태어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특히 첫사랑에게 사랑한다고 고백도 한번 못해본 인생이면
인생 말년에 가서 얼마나 후회가 되겠어요?
있는 용기 없는 용기 다 쥐어짜서라도 한번은 해봐야 돼.
고백했건만 거절당해 죽고 싶어도
나중에 꺼내보면... 그것이 바로 인생의 의미가 되고 빛이 되는 겁니다.
생에 대해 뭘 아는 것이 없이 교과서만 배워온 피래미에게는
그 푸근한 아줌마의 교실밖에서 들려준 뜻밖의 이야기가
너무나 신선하고 힘이 되어주었다.
군대가는 교회 오빠에게 사랑을 고백하러 가겠다는 내 어린 시절 친구를 위해
나는 그 오빠에게 흔쾌히 만나고 싶어한다고 전화 걸어 주었고.
그녀가 울면서 돌아왔을 때...
나는 엄앵란 아줌마의 이야기를... 그 친구에게 들려주었다.
우는 친구 어깨를 토닥이며
난 니가 너무 멋있게 보인다, 나중에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생긴 네가 부럽다
위로해 주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부럽다.^^
그 친군 바이올린을 전공했고
나는 지금도 간간히 들려주는 그 친구의 곡조 어딘가에서
늘 그날 밤 이야기를 두고두고 듣는다...^^
소년은 교실 문을 뻥 차고 나와
푸른 초원위에 누워 빛나는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 본다...
선원이었던 그 아이의 아버지가 심장병으로 일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셨을 때,
마침 계하다가 빵구를 내어버린 그녀의 어머니...
결국, 지독히도 가난한 환경으로 변해버린 상황에서
고3때부터 시작한 바이올린...
부모님의 도움없이 아니 오히려 심한 핍박속에 시작한 그녀의 예술인생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지만
그녀가 우리 교회에 등록하고 다니면서부터
신기하게도 길은 열리기 시작했던 것을 그녀와 그리고 나는 기억하고 있다.
당시 교회 청년부 회장이었던 바로 문제의 그 오빠 덕분으로...^^
그녀는 지금도 교회를 잘 다니고 있으며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다.
같은 대학생이었건만 그 오빠의 신앙인격은 그녀를 마치 친동생처럼 따듯하게 대해주었던 것이다.
이제 그녀는 숙명여대 대학원에서 음악치료학 석사과정을 밟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녀를 예술의 세계에 미치게 만든 장본인이 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앞집으로 이사 온 집 딸입니다.
초등 4학년 때, 갓 쪄서 김이 모락모락나는 쑥떡을 가지고 인사를 하러 온 아이...
가늘어 목소리까지 하늘하늘하던 그녀의 음성이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 하다.
조이플 앤젤스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던 그 아이는
당시 공부에 별로 소질이 없는 것다는 것을 안 그녀의 부모님이
발레의 세계로 방향을 잡아주었는데
예고를 다니던 시절,
그녀는 인간의 몸으로부터도
정신적 즐거움과 아름다움이 표현될 수 있다는 것에 눈을 열어주면서
친구들은 모두 그녀와 예술의 포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E대학을 다니던 중 헝거리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유니버셜 발레단에 입단하였는데,
지금은 한국종합예술대학에서 선생이 되려 공부를 하고 있다.
모교였던 예고로 발령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의 언니는 파리의 10대학에서 미학박사학위를 받고 와서
32세, 제법 늦은 나이에 출판사 사장과 결혼을 하였는데
클림트, 황금빛 유혹 이라는 책을 써서 예술서적으로는 꽤 길게
국내에서 베스트 셀러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꽤 유명한 정치인 집안의 자녀이었던 그녀는
아주 명석하고 정확한 성품의 언니였었는데,
법대 가라는 아버지께 어떻게 반항을 하였었던지...
그녀의 책 앞머리에는
내게 여인으로서의 삶을 주신 나의 어머니와
내가 여인의 삶을 준 나의 딸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라 씌여져 있다.
그 열풍에 휩싸여
미술을 전공하겠다 나선 또 한명의 나의 친구...
의사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끝끝내 반대를 하셨고,
결국 미술의 연장선상으로 선택한 건축의 세계.
그러나 그 때까지만 해도 그녀나 우리나 건축이 그렇게 험한 세계인지
꿈에도 몰랐었다.
그러나 그녀는 당당한 건축기사로서
거대한 미술을 하는 예술가로서 지금도 건재하다.
우리는 그렇게 예술을 사랑했고, 지금도 만나면 예술을 이야기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안에서는 정식으로 예술가가 아직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
대부분이 법조인이거나 경제인이지만
산다는 것이 예술인...^^ 사람들이다.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어쩌구 저쩌구~~
열화와 같은 광팬들을 몰고다니는 우리 집 남자들이
이 노래를 부르면 그들의 추종자들은 같이 울어준다.(아...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리고...
나 또한 예술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써 이제 이런 이야기 하고 싶다.
오늘날의 예술은
인간의 동물성을 오히려 아름답다고 말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고 추구하며 사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행복한 길이라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대세인듯 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읽고 있는 구약성경, 특히 시편은
인간적인 왜곡과 원망, 그리고 동물적 본능조차 배제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인간적 차원 이상의 것을 전해주는 들어올려진 문학이라는 사실.
시편 63편에서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배신과
자신이 은혜를 베풀어준 므미보셋의 변심...(후일 아니었다는 것이 들어나지만)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의 소리처럼 듣고 따랐던 아히도벨의 배신의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1.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라 탄식하고 있다...
삭막한 바람만이 부는 사막의 한가운데 홀로 버려진 심정... 인 것이다.
그런 다윗이 느닷없이 2절부터 이렇게 노래한다.
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하여 이와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3.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4. 이러므로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여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
5.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내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내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주여...
광야를 겪어보지 않고는 이런 예술을 할 수가 없다.
세상은 광야가운데
웃고 있어도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보라,
다윗은 광야의 한가운데서
울고 있지만 웃고 있는 것이다!!!
루이스는 시편사색이라는 책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속에서 하시고 계시는 예술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 중의 일부분을 발췌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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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이란 혹독한 것입니다.
자연적인 삶에서 초자연적인 삶으로 부름받아 나오는 것은 처음에는
(꼭 처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별의 고통은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느낄 수 있으니까요)
큰 대가가 요구되는 영예입니다.
같은 자연적인 삶에서 다른 삶을 살도록 부름받는 것도
이득뿐 아니라 상실이 따르는 법입니다.
인간에게는 다른 영장류들에게는 없는 온갖 어려움과 슬픔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 높은 차원으로 부름받아 올라가는 일에는 더 큰 대가가 요구됩니다.
하나님은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고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창12:1)
이는 가혹한 명령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위로는(그 순간 그것이 위로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편 기자가 신부를 위로하는 것과 대단히 유사합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떠나라 는 명령은 예수님에 의해서도 혹독하게 반복됩니다.
가히 악화되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 부모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라.
여기서 주님은 예의 그 격언조의 역설적인 방식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단조로운 산문적 의미에서) 미워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런 혹독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기로에 섰을 때는
자신의 자연적 권리라고 해도 결연하고 가차없이 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기로에 서게 되는 경우라 해도
이 말씀은 읽을 때 등골이 오싹해지는 사람들에게만 유익이 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부모를 미워하기가 너무 쉬운 사람,
자기 어머니를 미워하지 않으려고 평생 씨름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 말씀을 멀리하는 편이 최선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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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4편에서 시인이
주의 궁정에서의 한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 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10절)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의 의미는 분명 궁정에서 보내는 한날이 다른 곳에서 보내는 천 날보다 낫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읽으면서 제가 아는 한 ,
구약성경은 도달하지 못한 어떤 사상 하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약성경은 옛 말에 새로운 무게를 더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저 말을 덧붙여 말하는 방식으로 그 사상을 솜씨 있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시편 90편 4절은 하나님께는 천년이 어제 하루같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베드로 후서 3장 8절은-형이상학적 신학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이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천년이 하루같다는 말에 덧붙여 하루가 천년같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의 말은 아마도 하나님은 영세무궁하시다는 뜻,
즉 그분의 생명은 시간상으로 무한하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서신서는 우리를 완전히 그러한 시간의 흐름밖으로 데리고 나갑니다.
어떤 것도 하나님보다 오래 지속될 수 없듯이
어떤 것도 하나님으로부터 빠져 나와 과거속으로 흘러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말하는 하루,
(아마 그보다는) 1분, 1초 속에서 영원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길든 짧든 시간의 길이로는 계량할 수 없는 무엇을 접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시간으로부터-완전히는 아니더라도(이는 우리 인간에게는 맞지 않을 것입니다.)
그 횡포와 단선적unlinear 빈곤으로부터-마침내 벗어난 삶,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고 도리어 시간을 지배하는 삶을 향한 소망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래서 [시간의] 단순한 연속성이나 무상함이 우리에게 주는,
행복할 때와 불행할 때를 거의 가리지 않는 쓰라린 상처(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상처)가
마침내 치유되는 삶을 향한 소망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얼마나 시간과 불화하고 있는지 시간에 대해 경악하기 까지 합니다.
아니, 벌써 그렇게 자랐다니!
우리는 소리칩니다.
아! 시간이 어찌나 쏜살같은지!
인간사의 보편적인 이치인데도 그것이 거듭거듭 신기하다는 듯이 말입니다.
이는 마치 물고기가 물의 물기에 거듭거듭 놀라는 것처럼 이상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 물고기의 운명이 언젠가 육지 동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정말 이상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C. S. 루이스 『시편사색』중,
-시편의 두 번째 의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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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예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환경의 지배를 벗어나는...
그 영원한 세계의 그 모든 영원성과 아름다움의 집약체인 예수님을 통하여...
그리고 그 분께서 바로 내 속에 들어와 살게 해 주심으로 인하여
천국이라는 놀라운 세계를 열어놓으신 것이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주님은
나를 이 우주보다 더 귀하게 여겨주시고
자신의 생명과 바꾸실만큼 실제로 귀하게 대하여 주셨다.
그리고 이제 나는 고백한다.
주님은
나보다,
나의 인생보다,
그리고 나의 인생의 그 모든 의미보다
훨씬 소중하시고 훨씬 소중하신 분이십니다...
아멘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