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리아를 기록할 수 있는..
작성자명 [강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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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10.21
사건이 오고 고난이 와서 말씀이 겨우 깨달아지니..
말씀 깨닫고 은혜 누리라고, 그래서 사건과 고난을 주시나 봅니다
오랜만에 아무일 없는 하루의 중반을 보내고 있습니다
3일을 남겨 놓고 있는 지금...
간만에 아무일 없다 보니..
빨래하면서..
그래..내 인생이 빨래구나..더러운 먼지와 세상 찌꺼기들, 내 안에 정욕을 큐티라는 세탁기 통
에 돌리고~돌리고~ 은혜받아 대충 이제 된 것 같은데 아직도 더럽고...구체적으로 말씀의 뜨거
운 물을 퍼부어대니..뜨거워 죽겠고..사건으로 이리저리 돌리고 흔들고 비벼대니..벗어나 도망
가고싶고.. 물이 가득차 숨이 턱턱 막히고..그러다..물이빠지고 좀 쉴만하면..정신 못차릴 정도
의 속력으로 또다시 돌려대 기력을 홀라당 빼 놓고..이제 끝났나 싶으니..비눗물이 맑아질 때까
지 이것을 반복해야 하는....
여기 와서 석달동안..
별일을 그러나 믿음의 선배들에 비하면 아무 고난도 아닌 고난을 겪으며
희한하게도 말씀밖에 볼 수 없으니
말씀이 깨달아지고..
그래서 놀라서 큐티나눔 올리고..
그런데..오늘은 도대체 이 많고 많은 이름의 열거에..내가 무슨 죄를 봐야하나..
어디 사람이라 꼭 밝혀 놓은 이름들을 보면서..
나는 우리들 교회 사람 강희도 라는 것일 정말 감사했습니다
워낙 우리들 교회를 좋아하다 보니, 그래서 쉴새 없이 만나는 사람마다 얘기하다 보니..
어떤 후배는 언니..언니에게 우리들교회가 우상아녜요?
이러더라구요..
( :39 헷 사람 우리아라 이상 도합이 삼십 칠인이었더라 사무엘하 23:39 )
다윗이 우리아까지 기억하는 것 처럼..
누군가의 이름을 거론할 때 자기의 죄가 떠오르게 된다면 그 이름을 기억하고싶을까? 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다윗은 이미 회개를 했기에..그러나 우리들 교회에서 내 죄를 끊임없이 반복하여 고백하고 말씀에 근거해서 증거하는 것이 끝가지 다윗이 우이라의 이름을 기억하려 하는 것과 같지 않나 싶어 저도 저의 우리아를 다시 기억해보려 합니다
저를 우상으로 생각했던 아버지.
세상 무엇도 다 해줄 것 같았던 아버지의 연약함을 보게 되는 순간부터 저는 그 아버지를 가여워하기 보다 이제 쓸모없는 인간 취급을 했습니다
그리 좋은 형편이 아닌 가운데, 음악 선생님의 한마디에 그 힘든 음악 공부를 하게 되었고,
그것으로 귀족적인 생활을 하려는 꿈에 부풀어 교수가 되는 열망하나로, 그렇다고 죽자사자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온갖 교만은 다 떨고 다녔습니다
욕하면서 유행 좇는다고 우리집은 나라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경제공황을 유행좇듯 함께 겪어나갔습니다
그런 환경속에 음악공부를 하는 저에게 열심보다는 열등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자녀 셋의 대학 등록금 때문에 뼈골이 빠지시면서도 저에게 아르바이트 한번을 시키시지 않던 부모님이셨기에 저는 오히려 세상 물정 모르고 열등감과 함께 교만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저에게 아버지의 병 만성신부전증 은 정말 저를 향한 사형선고 같았습니다
그 병이 증상이 어떤 것인지 알기도 싫었고, 집에서 복막 투석을 하시는 아버지 모습이 보기 싫어서 투석을 하시는 시간만 되면 우울해지는, 돌아가신 후에도 그 시간대에 반복적으로 느껴지는 우울증도 우리들교회 와서 말씀이 들리기 전까지 있었습니다
섬기던 교회에서는 칭찬, 인정 받기에 여념이 없었고..
강선생은 꼭 천국갈거야..이렇게 교회일에 수고하니까.. 하면 저는 속으로 전 지금 지옥이거든요..
이런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돈을 벌어도 벌어도 어떻게 아는지 돈만 모이면 고스란히 집안일에 씌여져야 했고, 나중에는 이런일이 반복되니 저축도 하기 싫고 예비하기도 싫고 그래서 대학원도 다니고, 쇼핑에도 빠졌었습니다
그렇지만 해결되지 않는 막연한 두려움..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날까지도 저는 병원비를 걱정하며 며칠 버티시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말에도 마음속으로는 병원비,,병원비..했습니다
불신결혼하고 고난이 와서 말씀을 듣게 되었지만 은혜 받는 과정중에 가장 해결 되지 않는 것이
제가 살인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죽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돌아가신 날..마음 한켠에는.. 아..이제 내가 살겠구나..엄마 고생 덜하시겠구나..결혼 할 수 있겠구나..
왜 그렇게 결혼하는 것이 우상이 되었는지..꼭 아버지때문에 못갈 것 같았습니다,
유일하게 아버지와 저만이 혈액형이 같습니다
저는 주변에 누군가가 장기를 기증했다는 소리만 해도.. 나보고 그렇게 하라 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으로 아버지 투병 기간 중 내내 불안해 했습니다
저의 주제곡은 돈 내놔..! 였습니다
내가 가족들에게 어쩔수 없이 내 놓았던 돈 내어 놓으라는..
우리들교회에 와서 결국 내가 의로 살았지만, 겉으로는 모든 것을 갖춘 듯 해 보였지만..
가증 덩어리였는지..보게 되었습니다
의식이 없는 아버지께..도저히 뭘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목사님께 부탁드려 예배도 드리고 옆에서 찬송도 하고 기도도 했지만..
믿음이 없었기에..행위만 흉내내고 있었죠..
아버지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아빠..미안해..내가 정말 미안해..세상 누구보다 아빠가 가장 사랑한 딸이었는데..내가 너무 못되서..아빠한테..신장 주지 못해서 미안해..그렇게 힘들었는데..하나님 품에 안기세요..정말 미안해..내가 아빠랑 같이 갈 수 있다면..그렇게 하고 싶은데..정말 미안해..
중환자실에 누워계신 아버지의 손을 잡고 그렇게 울면서 귀에대고 말했습니다
병원비를 걱정하던 저이기에..아버지께서 그 상태인데도 레슨을 다녔기에..
레슨 다녀오겠다 하려고 아버지의 손을 잡았더니..전혀 의식이 없는 아버지의 손에 힘이 들어갔습니다..제 손을 꽉 잡으셨었는데..
그리고는 그 다음날 새벽 돌아가셨습니다
하는 일에 인정받고 교회일도 열심이었고 그 가운데 지금의 남편을 만나 인생의 전환점이라 여기며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은혜를 받는다 하면서도 돈..돈..
그러는 가운데 마태복음말씀 중 양과 염소의 비유로 목사님께서 말씀하실 때 그 때 나의 죄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보이게 되었고, 유다가 돈을 좋아 예수님 팔고 자살한 것 처럼 저도 돈 이상 돈 이하도 없는, 주님께서 나의 생색에 나를 전혀 기억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을 듣고..
내 죄가 그때서야 시원하게 보여서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기까지, 말씀에 빛이 비춰지기까지, 누구에게도 얘기할 수 없었던 것을 저는 불신결혼과 함께 아버지 사건을 우리아로 기록하길 원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가 말 할 수 없었던 아버지 사건을 누구에게나 얘기할 수 있음은 나를 위해 30인의 중보의 용사를 예비하시는 주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저의 믿음의 역사에 기록해야할 우리아와 함께 함께 고난 가운데 항상 염려해주시고 기도해주시고 문안해주시는 중보의 용사들이 있기에 저는 오늘도 말씀을 통해 은혜 받으며 숨을 쉬며 살 수 있습니다
제가 힘들어 할 때 함께 힘들어해주시고, 제가 울 때 함께 울어주시고, 기쁠때 다가올 고난을 예비하도록 미리 권면해주시는 우리들 공동체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제가 지체들의 고난 가운데 함께하는 삼십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