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삼할정도는 요압에게 주고 싶다
작성자명 [순정 하]
댓글 0
날짜 2008.10.07
차라리
내가 죽어야하는데
내 자녀가 죽어가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내가 더 많이 살았으니
내 자녀들보다 더 많이 살아 온 모든 날들이 다 죄악인데
엉뚱하게
내 자녀가 죽어가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내 자녀들이
황금만능 물질주의에 죽어가고
사치와 허영의 외모 지상주의에 죽어가고
보아도 족함이 없는 탐미적인 영상주의에 죽어가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나는
오늘 심령이 견디다못해
아들을 앉혀 놓고
압살롬아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란 말씀을 읽도록 권했습니다
네가 아프느니
차라니 내 아픈게 낫고
네 피부가 여드름으로 고민하느니
차라니 내 피부가 여드름으로 고민하는게 엄마는 더 낫다고.....
21살 다 큰 아들이지만
아들은 한국어에 궁색하고
나는 영어에 궁색하여 단순한 몇 마디를 주고 받을 수 밖에 없을지라도
나는 아들에게 성경을 읽히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내가 알 수 있는 것들을
다 이야기해 줄 수 없는 통증은 비록 늘 가슴속에 남아있지만
그 통증이 더 깊고 강렬한 믿음의 기도로 살아계신 아버지의 귓전을 울리고도
남음이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문제는
내가 그렇게 내 하늘 아빠를 너무 믿다보니 기도는 하지 않고
알아서 해주시겠지라는 너무나 안일한 의존성이 문제이지요
그러나
오늘 나는 나의 이 안일한 의존성을 주님앞에 내려놓습니다
이렇게 가다간
정말 내 아들이 영육간에 다 죽어질 수도 있다는 개연성때문입니다
정작으로
엄벌에 처해 죽어야 할
내가 용서받았다는 확신속에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부모된 나는 자식의 모든 고통속에 내 죄악들을 돌아보며
다시 그 죄악들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에
나 역시 다윗처럼 절규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설령 그 누구의 죄도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라는
말씀을 주셔도 나는 그 말씀을 선듯 선택하여 받아드리지 못하고
여전히 동에서 서가 먼 것같이 사해주신 죄악을 다시 가져 와 부등켜 안고
절규 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이러한 순간에
하나님 나라와 그 백성들을 위해
눈물을 거두게 할 수 있는 요압같은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축복이겠지요
다윗의 치부를 훤히 다 아는 요압이기에
다윗의 왕권 중 삼할정도는 압도할 수 있는 요압이 있다는 것은
다윗에게는 좀 불편했는지 몰라도
나라의 안정을 위해서는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죽음이 깃드여도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그 백성들을 위한 위로와 안녕은 멈출 수가 없겠지요
바라긴
요압보다 더 내 치부를 훤히 아는 말씀이 나를 압도하고 견제하사
내게 닥친 고락간의 충격을 완화시켜주시고 당신의 나라와 의를 위한 전진을
멈추지 않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