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이여 나와 운명을 함께 할 수 있겠나
작성자명 [순정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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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10.01
한 십년전인가
남편이 생명의 위험을 느낄정도로 많이 아팠을때
정작으로 고통스러웠던 것은 자신의 몸보다도
약해빠진 마누라를 맡기고 갈
단 한 사람의 벗도 없었음이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
다윗의 친구 후새가 나옵니다
역대상 27장 33절에 보면
후새는 다윗의 벗으로 아히도벨은 다윗의 모사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사는 직분을 뜻하지만
벗은 관계를 뜻하는 것으로
아히도벨과 후새의 갈림길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모사라는 직분은
아무리 오래도록 한 주인을 모셨다쳐도
새로운 주인이 오면 얼마든지 옛 주인을 떠날 수 있는 것이지요
그가 직분에 충성했다고 관계에도 충성했다고 보장할 수는 없는 일이니깐요
설령 관계가 좋았다쳐도
모사라는 직분은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니깐요
허나 벗은 그와 좀 틀리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벗이 왕이였다면
온 나라가 다 왕을 버릴지라고 그는 그 왕을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순간
울 주님 왕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먼저
손 내밀어
친구라는 우정의 관계로 다가오셨음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왜 그리하셨을까?
사색이 깊어지는 이 가을 밤
울 주님과 함께 다윗의 벗을 묵상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아히도벨의 모사가
하나님의 말씀과 일반이라고 할 정도로
뛰어난 그의 모사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 다윗일 것입니다
또한 압살롬이 아히도벨의 모사를
따르기만 한다면 필시 반역에 성공할 것이라는 걸 가장 많이 예견하는 사람
역시 다윗일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아히도벨의 모사는 다윗에게 있어 가장 큰 두려움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두려움을 기도로 극복하는 것을 사무엘하 15장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하니라)
바로 그 다윗의 기도를 응답해주시기 위해
쓰임받은 사람이 곧 다윗의 벗인 후새였음을 묵상해 보며
울 주님께서 올린 기도의 응답으로 아버지께 쓰임받는 내가 없다면
나는 과연 주님의 벗이라 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주님께서 기도하셨을뿐만이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그리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 주님의 기도에
나는 얼마큼 쓰임받고 있는 것일까?
반란과 반역자의 진영 깊숙히 들어 간 후새처럼 말입니다
그 위급한 풍전등화속에서도 다윗과 함께 운명의 잔을 마심에
불안의 기색이라곤 전혀 찾아 볼 수 없었으니..................부럽습니다.
오히려
그는 압살롬을 압도하며 리더해나가고 있지 않은가?
다윗의 벗이였으니 그 연륜 또한 압살롬을 능가하지 않을까 싶네요
아하
나는 어떠한가
울 주님과 벗이라면
나는 어떠해야하는가?
내 벗 주님의 그 오묘한 경륜과 섭리의 말씀으로
늘 대화를 나누는 자라면 나는 어떠해야 하는가?
반란과 반역자들로 들끓는
이 세상을 압도하며 리더해 나가야하지 않을까?
내가 주님과 벗이라면
풍전등화의 상황일지라도
그분과 함께 그분이 주는 잔을 받아 마시는게 아름답지 않은가?
그 잔속에 무엇이 들어 있든............
벗은
허물을 덮고도 남아
비록 상대방이 죄로인해 곤경에 처했다쳐도
결코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는 옳고 그름에 반응하는게 아니라 마음을 주고 받는 관계로
옳고 그름을 무시하는게 아니라 보다 더 높고 깊은 생명을 추구하는 관계라 볼 수 있습니다
분명 누구나다 아는 상대방의 과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벗은 그 과오로 인해 우정을 파괴하지 않습니다
이 밤
울 주님
내 무수한 과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절을 선언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내 과오로인하여 더욱 더
마음의 주고받는 관계로 나를 붙들고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해봅니다
어느새
세상이 알 수도 줄 수도 없는 평화가
그 벗되신 주님으로 인하여 가득 채워지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