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처세술
작성자명 [순정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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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9.30
지난 금요일 오후 4시
나는 내 딸과 함께
프레드와 캔이 기다리고 있는 가게 건물 3층으로 올라갔습니다
일층 가게에서 늘 일하고 있는데도
3층에 한번 올라가기가 왜 그리 힘든지요
허나
그 날만큼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올라갔답니다
마약과 알콜 중독자들의 회복 센터로 건물을 쓰기로 계약한 후
맨 처음으로 들어 올
두 사람을 놓고 기도하는 모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이름은 로니와 테리입니다
이제
나는
사막과 황무지같은 인생여정에서
그들과 그들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생수가 터지고 꽃이 피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을 기여이 그렇게 만들어가시는
성령 하나님의 능력을 지상에서 꼭 보고 말 것입니다
그 날
그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내내
나를 압도하고 있었던 말씀은
진실로
진실로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은
이생에 잘났다하는 자가 아니요
이생에 지혜있다하는 자가 아니요
세상에서 비천하고 약하고 추한 자들을 택하신다는 것이였답니다
그리고
울 아빠 하나님-
막강한 애굽 나라의 왕이라는 것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을 바로앞에서
너무나 당당하게 자신을 노예들의 하나님 즉 히브리인의 하나님이라고 모세의 입을
통해 선포한 것이 생각나더라고요
노예들을 부끄럽게 생각하시지 않고
당신의 자녀요 당신의 백성으로 당당하게
바로 앞에 히브리인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는 정경을
상상해보면 참 감동적이지요
세상 그 누가
마약과 알콜에 헤메이다 만신창이가 된 자들을
자기 누이
자기 오빠
자기 모친
자기 백성으로 불러줄 것인가요?
가게에 있다보면
자주 자주
술과
마약과
가난에 이그러진 자신을 어디 눕힐데 없어
마마
마마하며
엎허져 들어오는 그들-
어느땐
그 모양새들이
하도 하도 추악해
내가 왜 니 마마냐고 다시는 그리 부르지 말라고
소리 소리 친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그리 보내 놓고 속으로 울 망정.......
(제발 정신 좀 차리고 살아봐
너희들은 그래도 남자로 태어났쟎아!)
어느땐
내 손을
꺼칠한 그들의 입술에 갖다대곤
뜬금없이 부벼대는 그들을 마냥 수용한다는게
얼마나 힘겨운 영적 노동인지..............
그런 순간마다 나는 주님을 묵상해봅니다
죄많은 여인이
예수님께 다가와
그 발등에 입맞추며 흘린 눈물을 머리칼로 닦을제
그 누구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행위를
끝까지 전적으로 수용해주셨던 주님을..........
그러나
나는 아무리 그들을 전적으로 수용하려 노력해도 그게 안됩니다
그나마
머리에서 가슴까지는 잘 가다가도
구불 구불한 내장을 지나
내 몸밖으로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그만 내게 온 그들을 다 내쳐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다윗이 죽은 개같은 시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전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그는 나와 무엇이 어찌 다르길래 그리 할 수 있었을까?
다윗을 향해 시므이가 저주하는 것을 봅니다
그가 얼마나 저주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싶었으면
여호와께서란 말을 두번씩이나 언급했을까 싶습니다
어쩜 그렇게 쉽게 여호와란 말을 끌어다 쓸까요?
나도 그런 적이 많았겠지요
주께 용서를 빕니다
그렇게 퍼붓는 시므이의 말에 다윗은 신기할정도 눈썹하나 미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그 저주를 편안히 받아 먹습니다
마치 그 날의 일용할 양식처럼..............
그리고 다윗이야말로 망녕됨없이 그 저주의 정당성을 여호와께 돌리고 있음을 봅니다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얼마나 편안한 말인지요?
말이 편안하면
좀 언#51738;았던 맘도 누그러지고 불끈했던 자세도 편안해지겠지요
다윗의 처세술이 참으로 돋보이는 광경이지요
나는 저주 근처에도 갈 수 없는
조그마한 말에도 얼마나 분노하며 치를 떠는지모릅니다
내 죄악을 챙기기보담은
그저 분하고 억울한 것만 챙기려들때가 많습니다
허나 다윗은 자신의 분하고 억울한 것으로 인하여
자기의 죄악을 조금이라도 희소화 시키지 않는 것을 봅니다
오히려
그는 분하면 분할 수록 억울하면 억울할수록
자신을 저주의 십자가에 당당하게 못 박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차피 나는 죄인이지 않는가?
내가 대접받아야 할 자리는 바로 그 자리가 아닌가?
그렇게 십자가에 못박혀 있어도 하나도 하나님께 섭섭한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이 된 것이지요
나역시 그래야하겠지요
다윗의 영성은
아마 여기서 최고의 절정을 보여주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다윗의 이런 영성의 디엔에이는
먼 훗 날
울 주님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지나가던 사람들이 퍼붓던 저주와 모욕을 묵묵히 감당하고 계셨던
주님의 영성과 흡사 닮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고보면 다윗은 그때 이미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해놓으신 한 제물을 믿음으로 미리 보면서 살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비록 그는 죄로 인하여
인격의 완전성은 박살 났으나
오히려 회개와 눈물로 풍성해진 겸손과 다시금 순결을 사모하는
다윗의 간절한 인간성이 시므이의 저주를 전적으로 수용하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생각할수록
나도 회개와 자복할 것이 많은데
두리뭉실 쳐박아 놓고 이리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 죄악이 쳐박혀 있는 공간만큼 타인을 전적으로 수용하지 못해
악을 선으로
화를 복으로
질병을 건강으로
영벌을 영생으로 재창조해주시는 하나님을
아직까지도 내 이웃들에게 보여주질 못하고 있나봅니다
그 소원은 간절한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