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행렬 그러나
작성자명 [순정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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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9.28
남편과 33살에 사별한 후
다시 또 결혼한지 오년만에 이혼한 여인이
어린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녀의 아파트는 오층에 있었고
내 아파트는 일층에 있었습니다
하루는 침대에 잠시 누워 깜박 잠들었는데
그녀가 너무나 가난한 나머지
한방울씩
한방울씩
똑똑 흘리는 눈물이
침대에 누워 있는 내 얼굴로 떨어지는 환영에 그만 놀라
엘리베이터 아닌
다섯층의 계단을 순식간에 밟아 올라가 그녀의 아파트를 노크했습니다
(혹시 이 여자 살기가 너무 버겨워 자살이라도 했음 나 어떻해~~)
좀 있으니 문이 열렸습니다
그순간처럼 안도의 숨을 쉰 적이 있었을까?
그 때 그녀가 내게 해 준말이 있었습니다
나는 주인을 잘 만나야 잘 살 수 있는 여자라고.....
(십오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주안에서 안온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다윗이 수난의 첫 길목으로 진입하는 장면을 봅니다
그리고
그런 순간에도 불구하고 다윗을 주인으로 따르는 종들이 나오는 것을 봅니다
내가
진정 수난 당하고 있는 자의 이웃으로 살아가느냐 마느냐는
오늘날 가장 격렬한 전쟁터의 한가운데 놓여있는
우리들 마음이 선택해야 하는 과제중의 하나입니다
어쩜
그것은 수치와 참혹함으로 오시는 생명나무되신 주님을 선택하느냐
아님 여전히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선악과를 따먹느냐의 연장전으로
선택의 두려움을 통과하지 않으면 결단하기 어려운 과제중의 하나 일 것입니다
내가 이 주인을 따름으로서
그 주인이 당하는 수치와 참혹함을 나도 겪을 것이며
그 주인이 흘리는 눈물을 나도 흘릴 것이며
그 주인이 흘리는 피를 나도 흘릴 것이라는 각오없이는 결단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주님 오시기전
주님의 예표로 보여주시던 다윗이 오늘 감람산을 걸어갑니다(훗날 이 길을 수난을 앞두신
주님께서 걸으셨다지요)
머리를 스스로 가리고 맨발로 걸으며 울면서 갑니다
그 뒤엔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인을 좇아 자신들도 머리를 가리우고 울면서 가는 것을 봅니다
그야말로 미친 사람들의 행렬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돌아보면
나도 주인을 잘 택해
수치와 참혹함을 당한 적도 있었고
어떤 순간엔 압살롬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황홀케하는 그 아름다움의 중력에서
벗어나지 못해 내 주인되신 주님께 반역의 칼을 서슴없이 휘두르던 때도 있었습니다
근데 지금도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그 정도로 아름다왔던 과거로 끝이 나면 좋으련만
그리고 그렇게 많이 그 아름다움에 속았으면
이젠 아름다움에 치를 떨어야 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세상은 갈수록 아름다와보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모의 대상이 되였던
알살롬의 그 숱많은 머리결들이 지닌 수많은 신비로움으로
날 유혹 하고 있는 것은 여전히 동일합니다
배우고 익히는 학문은 얼마나 아름답던지요
특히 내가 이루고픈 세계는 얼마나 많은 유혹이 있는지 모릅니다
쓰고픈 대로 쓰고
솟구치는 욕망대로
그 욕망의 합리화를 위해
벽돌 한 장 한 장 치열하게 공들여
쌓아 올린 문학의 바벨탑은
여전히 만인의 시선을 끌어 당기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허나
나는 그 세계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정도로
애매모호한 매음의 색다른 현장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누군가 문학은 영혼과 정신의 매음행위라고 정의한 것처럼....
그런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는 이렇게 펜대신 노동의 하루 하루를 선물로 주신
주님을 인정하며 말씀앞에 자판기를 두드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 열조들의 죄악과
내 죄악을 기억하며
분명 용서받은 죄인이지만
그래도 가야하는 이 길은
죄악의 수치와 참혹함을 드러내는 십자가의 길 밖에 없다는 것을
오늘 다윗을 따르는 종들을 보며 다시한번 되새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