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어제는 권선구 행정타운교회 신우회 예배시 은혜롭게 들었던 최윤영 목사님의 말씀을 옮깁니다.
준비 찬송 406장을 부르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터치하심을 느끼면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하님의 입장에서는 인사라는 것이 작은 일이지만 나에게는 넘어야 할 산 이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하여 참으로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이 어렵지만 그래! 내가 너를 책임져줄게 그리고 너는 담대하라는 음성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1. 나 어느 곳에 있든지 늘 맘이 편하다 주 예수 주신 평안함 늘 충만하도다. 2. 내 맘에 솟는 영생 수한 없이 흐르니 목마름 다시 없으며 늘 평안하도다. 3. 참되신 주의 사랑을 형언치 못하네 그 사랑 내 맘 여시고 소망을 주셨네. 4. 주 예수 온갖 고난을 왜 몸소 당했나 주 함께 고난 받으면 면류관 얻겠네.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 악한 죄 파도가 많으나 맘이 늘 평안해
<형제 여러분,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주님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에게 같은 말을 다시 쓰는 것이 내게는 귀찮은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여러분에게 안전합니다. 포피를 베어 할례한 것을 자랑하며 악을 행하는 개 같은 자들을 주의하십시오.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랑하며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는 우리가 참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빌립보서 3:1#12336;3)
참된 신앙의 모습은 기뻐하는 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 중의 하나인 희락이 기뻐하라 입니다. 70인이 전도할 때 기뻐하고 돌아왔습니다. <누가복음 10:17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기도할 때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성도의 교제 때 기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사도행전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욕을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받는 것을 기뻐하였습니다. 사도행전 5:41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믿음을 가졌다고 하는 성도라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항상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데살로니가서에서도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직분을 맡은 자로써 기쁨이 없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입니까? 스데반은 순교의 현장에서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예배와 삶속에서도 항상 기쁨이 넘쳐야 합니다. 빌립보서에는 기뻐하라가 10번 이상 나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육체가 자유로운 사람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개 같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에게 쓰는 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민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신앙에서 외식주의나 타락의 길을 걸어갈 때 기쁨이 사라집니다. 유대인들은 8일 만에 할례를 받은 것을 대단히 긍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할례 받는 것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징으로 삼고 살았습니다.
할례를 행함으로 이방인과 구별되었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전통으로 내려오면서 변질이 되었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직분을 받는 다고 구원을 받지는 않습니다. 이것만 주장하고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몸을 상하게만 하는 할례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모든 삶이 하나님 앞에서 구체적인 삶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교회 앞에 대학교가 있었는데 점심때만 되면 나와서 삼삼오오 모여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목사님이 몇 년 동안 담배를 이곳에서 피우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고, 푯말을 써서 놓아도 하지 못하게 만들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CCTV를 설치하였더니 자취를 감추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고 있음을 자각하는 즉 코람데오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으로 예배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배에는 공 예배와 삶으로서 드리는 예배가 일치하여야 합니다. 레위기의 소제 중 제사 드리는 방법 중 한 움큼을 드리는데 이것은 전체를 드리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기념하여 드리는 기념물 즉 전체를 드리는 것입니다.
성전 앞에서 두 손을 높이 들고 금식하여 십일조를 드리는 바리새인의 모습 자기 의를 드러내는 모습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나올 자격도 없는데 나를 사랑하신 주님이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입을 열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갈라디아서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우리의 예배가 영과 진리가 살아서 역사하시는 참된 예배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우리의 작은 것이 하나님 앞에 전체로 드려지는 모습으로 살아갑시다. 어떠한 고난이 닥칠지라도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우리의 모습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박국 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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