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목적
작성자명 [노규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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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9.27
우리(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일까?
아담과 하와의 예를 들어보자.
아담과 하와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었나?
그 마음속에 하나님을 몰아내고 자신이 하나님이 될려고
했던 교만이 있었다.
이것은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할려고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고 또 할려고 하는 것이다.
즉 죄의 무서움이다.
렘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다윗의 범죄를, 다윗의 아버지이시며 우리들의 아버지시기도 한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관점, 하나님의 목적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자식인
다윗이 범죄하도록 내버려두셨을까?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세상에 어떤 부모가 자식이 고통 받기를 원할까?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전지 전능하신 분이 아니신가!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셨다면 다윗은 범죄하지 않을 수 있었다.
곧 다윗이 범죄했다는 말을 하나님께서 내어버려 두셨다는 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성경의 모든 사건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을 알려고 하면 우리는 성경의 기록들을
정말로 하나님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목적에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다윗의 행동을 통하여 한번 살펴보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 곧 구속사적인 의미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먼저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율법)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유부녀와 간음한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셨나?
또한 다윗은 밧세바의 신분에 대하여 알고 있었다.
곧 우리아의 아내임을 알았다는 말이다.
우리아가 누구인가?
다윗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는 충성스러운
부하였다.
그 부하의 아내였던 것이다.
그런데도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을 했다.
밧세바가 임신한 사실을 알자 어떤한 조치를 취했는가?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불러서 밧세바와 동침하게 하여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려고 했지만, 충성스러운 우리아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 다음 조치는 무엇이었나?
차도살인지계
이것이 우리가 믿음의 사람으로 알고 있는 다윗의 본 모습이다.
그 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무엇인가?
다윗은 양심의 가책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어디에서 보여주는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나단 선지자의 비유를 통한 책망이다.
전혀 양심의 가책이 없는 다윗의 모습!
이것이 바로 죄의 모습이고 죄의 능력이다.
죄에 사로잡힌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롬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바로 이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했다.
나 같은 더럽고도 악한 죄인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다윗은 그 이후에 어떠한 고백을 하는가?
철저하게 자기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한다.
시편51:5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그리고 드디어 다윗은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시편40:6-7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인용한 시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남포교회 박영선 목사님의
설교에 잘 나와있다.
자 이제 이 사건을 통한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자?
그것은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들에게
죄에 대한 지식을 주시고자 하지 않으셨을까?
십자가의 예수님께로 인도하시고자 하지 않으셨을까?
십자가의 예수님을 제대로 알려면, 그 죽으심과 부활을
제대로 알려면 죄에 대한 지식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죄를 알지 못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온전히 알수 있을까?
죄는 모든 일에서, 모든 사건에서, 모든 현상에서
내 마음의 중심에서 하나님을 제외시키고
오직 나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마음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주는 그 무한한 기쁨과 평화와 자유를
누릴려면 죄에 대한 철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내 안에 있는 본성적인 죄에 대하여 알아야 된다는 말이다.
이 땅의 모든 설교자들에게 정말로 부탁드리고 싶다.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죄에 대한 무서운 분노를, 즉 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철저히 가르쳐 달라는 부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