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21일 (목)
히브리서 11:27-40
구치소는 많이 춥지요?
집사님.
잘 지내시나요? 구치소는 많이 춥지요?
요 며칠 날씨가 추워지면서 집사님 생각이 더 나네요. 며칠 전 돌아가신 신영복 교수님의 글에서 본 ‘감옥에서 추울 때는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간다’는 내용이 생각나서 가슴이 더 시려오네요.
부인 집사님께 언제 면회 가면 되느냐고 계속 물어보다가 오늘 집사님이 난생 처음으로 편지를 써서 보냈더라는 소식을 접하고는 왜 진작 편지 생각을 못했을까 회개가 되었습니다. 직접 얼굴 마주보고 얘기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밖에 있는 사람들의 인사치례만 생각하느라 미처 편지 생각을 못했습니다.
문득 대학에서 처음 집사님 만날 때가 생각나네요. 잘 생기기도 했지만 훤칠한 키에다 자가용이며 옷이며 촌놈인 나와는 다른 나라에서 살다 온 사람 같았지요. 병원에서의 수련의 시절에도 집사님은 동료 의사, 간호사들에게 단연 인기 짱이었지요. 그러다 20여년이 넘은 세월이 지나 휘문 성전 본당 앞 계단에서 다시 만났을 때 수척해진 얼굴색이며 차림새를 보고는 막연히 무슨 일이 있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저의 학창시절을 잘 아니까 구역이 달라서 한 목장이 될 일이 없어서 다행이라는 제 기대와 달리 집사님 댁이 저희 집 근처로 이사 오면서 교회에서 한 목장으로 묶어주셔서 제가 속으로 ‘그럼 그렇지’ 하며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하나님의 기막힌 세팅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집사님이 7년 동안 교회를 다니면서 세례도 안 받았다는 사실에 대략 난감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동안 제가 제대로 인도도 못 했는데도 집사님이 세례도 받고 일대일 양육과정까지 마쳐서 얼마나 감사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 동안 목장에서 재판 과정에 대해 여러 번 나누기는 했습니다만 집사님이 지난 달에 갑자기 구속이 되었을 때 지금까지 제 주위에서 그런 일이 없었던 터라 저도 무척 당황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겨우 한 번 접견을 하고, 그 날 이후 집사님에 대한 기도를 매일 하긴 했습니다만 마음에 큰 짐을 진 것처럼 늘 답답하고 힘들었습니다. 1월에도 다시 가겠다고는 했는데 차일피일 시간만 지나가네요. 그러다 오늘 부인 집사님 문자에서 편지했다는 내용을 보고서야 접견보다 편지가 낫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집사님의 바램과 달리 무정하게도 아직 시간이 있어 여러 번 편지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되므로 자주 편지 드리겠습니다. 그냥 제가 살아온 얘기와 어떻게 믿게 되었나를 나누고 싶어서니까 너무 언짢게 생각마시구요. 끝으로 눈에 띄는 오늘 말씀 한 구절로 제 소망을 담아 작별인사를 대신할까 합니다. ‘믿음으로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시기를’(히 11:34).
적용 :
수감 중이신 집사님을 위해 기도드리겠습니다.
매일 편지를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