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의 이혼
작성자명 [주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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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9.20
삼하12:1-14
다윗은 시편을 쓴 시인이자
골리앗을 물리친 군인이며
정치가로서도 뛰어난 평판을 듣는 탁월한 인물이다.
10대에 초원에서 양을 돌보며 보냈고
20대에 사울에게 #51922;겨 광야에서 지냈으며
30대에 드디어 왕위에 올라
40년간을 이스라엘을 치리하였던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
지금도 국가 이스라엘은
그들의 국기에 다윗의 별을 그려넣어 그를 기념하고 사랑한다.
다윗이여, 영원하라!!
그런 다윗이 말년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가 타락하기 시작한다...
죄의 시작은 뉘게나 그렇듯 별로 심각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열매를 거두게 되는 날,
그 하나의 무게만도 얼마나 질식할 정도로 무거운지
나는 경험하였다...
모든 진실의 문이 닫히기 시작한다.
진짜가 새어나오면... 큰일난다!
무덤은 회칠되어져야 하며
더욱 아름답고 꼼꼼하게 포장되어져야 한다.
진실은 더 이상 자신에게 조차 중요해 지지가 않는다.
다만 거짓이든 종교이든 자신을 지탱해줄 보호막만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속을 헤집고 숨어들어가리라.
그런데 어인 은혜지
다윗이 이런 생지옥을 경험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나단을 보내시어 회개를 촉구하신다.
하나님의 법과 도덕은 하나님의 인격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하나님의 인격에 반하는 것이 악이다.
다윗은 지도자이다.
순종함으로 천국의 문을 연 왕 아래서 백성은 점점 천국생활을 한다.
그러나 불순종함으로 지옥의 문을 연 왕 아래서 백성이 경험하는 것은 불안과 황폐함...
그것이 심해지면 우상숭배와 자아도취로 치닫게 된다.
<지옥>만큼 기독교 교리에서 인기없고 혐오스러운 교리가 또 있을까?
그러나 이 교리는 언제나 성경과
그리고 주님 자신에 의하여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교리이다.
기독교 세계는 언제나 이 교리를 견지해 왔다.
또한 이것은 이성의 지지를 받는 교리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사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구원이 일어날 수 있는가?
사람들은 흔히들 말하기를
지극히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어떻게 지옥을 만드실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
그러나 먼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이 이 지옥을 면하게 하기 위해서
어떤 댓가를 치루셨는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그처럼 크신데도 왜 지옥은 여전히 존재하느냐 하는 것이다.
다윗이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했다.
그가 회개하지 않자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보내신다.
나단은 가난한 자의 양을 비열하게 노략질한 부자의 비유를 들자
다윗은 크게 분노하여 말하기를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사람은 마땅히 죽을자라
저가 불쌍히 여기지 않고 이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ㅅ ㅐ 끼를 사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불의한 일을 보면 이런 응징의 마음이 일어난다.
혹, 복수의 마음인가?
그러나 성경은 단호히 말씀하시기를
복수의 열정에 조금이라도 빠져드는 것은 아주 치명적인 죄라 하신다.
그러나 그에게 끝끝내 회심할 뜻이 없다면,
영원한 세계에서 그는 어떤 처지에 처해지는 것이 알맞다는 말일까...?
만약 그 비열한 부자가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채
지금의 행복을 영원히 확고하게 누리게 되기를
자신이 승자임을 더없이 확신하는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기를 정말로 바랄수 있다는 말인가?
다윗이 회개하지 않고
충신을 죽이고 그의 아내를 약탈한 사건에 양심이 거리끼지 않으며
정욕으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정당화시키는
자기의 왕으로서의 권위에 만족해 하는 상태가 영원히 지속된다면...?
이것은 뭔가 그 비열한 인간이 고통받기를 바라는 따위의 욕망이 아니라
늦기 전에 정의가 옹호되어야 한다는 요구,
설사 그것이 완전하고 충분하게 정복할 수 없다 해도 적어도
이 비열하고 이기적인 영혼안에 진리의 깃발만큼은 꽂아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윤리적인 요구인 것이다.
설사 그 후에 그가 선해지지 않는다해도
스스로 잘못된 존재임을 아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에게 더 나은 일이다.
아무리 자비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도
이런 인간이 무서운 환상에 빠진 채 영원히 만족하며 지내기를 바랄수는 없는 것이다.
나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용서하시라고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은
묵과와 용서를 혼동하는데서 나오는 태도이다.
악을 묵과하는 것은 악을 무시하는 것이며 악을 선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용서가 이루어지려면 용서를 베푸는 쪽뿐 아니라 받아들이는 쪽도 있어야 한다.
자기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용서도 받아들일 수 없다.
에드윈 베번 박사가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그의 책 <상징과 믿음>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지옥보다 천국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것은
그것이 인간성의 본향으로써 영광을 얻은 인간의 삶이 함축하는 바를
모두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옥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닙니다.
지옥은 결코 천국과 평행선상에 있지 않습니다.
지옥은 바깥 어두움 , 존재가 비존재로 사라지는 바깥 태두리입니다.
하였다.
천국은 인간의 인간성이 온전히 실현되는 곳이요,
지옥은 인간성이 완전히 소멸되는 곳이다.
이제, 나단 선지자의 말씀을 들을 차례가 왔다.
이르되
왕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고
사울의 손에서 너를 구출해 내었으며
사울의 궁전과 그의 처들을 너에게 주었고
또 이스라엘과 유다를 너에게 맡겨 다스리게 하였다.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다면 내가 너에게 더 많은 것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너는 나 여호와의 법을 무시하고 이런 끔찍한 일을 하였느냐?
너는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빼앗았다.
네가 나를 업신여기고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아 네 처로 삼았으니
칼이 네 집에서 영영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내가 네 집안에서 너에게 미칠 화를 불러 일으키고
또 네가 보는 앞에서 네 처들을 너와 가까운 사람에게 주겠다.
그가 밝은 대낮에 네 처들을 욕보일 것이다.
너는 그 일을 몰래 해치웠으나
나는 이 일을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보는 앞에서 대낮에 행할 것이다.
그러자 다윗은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습니다. 하고 나단에게 자기 잘못을 고백하였다.
그러자 나단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여호와께서는 왕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왕은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왕이 원수들에게 여호와를 경멸하고 모독할 기회를 주었으므로
왕의 아들이 죽게 될 것입니다.
/ 현대인의 성경 삼하 12:7-14
오, 주님...
죽어서 지옥가는 것보다
살아서 벌받는 것이 훨씬 낫겠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비옵나니
속히 주님의 목전에 진실로 속죄하여 벌의 길이와 강도가 약해지기를
그리하여 가정에 유전되는 죄가 끊어져 거룩한 자녀들로 자라나게 하여주옵소서!!
원수들에게 여호와를 경멸하고 모독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미 빼앗긴 여호와의 영광을 다시 회복하고 찾아와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네가 그사람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지은 죄를 입밖에 내어 회개합니다.
주님은 참담한 제 마음을 아시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내 죄를 위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길이요 진리요 생명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이제 반역된 제 영혼안에 진리의 깃발을 더욱 꽂으소서!!
아멘 주예수여 어서 오시옵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