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조회&간음
작성자명 [순정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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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9.19
언약 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영채 가운데 유하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신복들이 바깥들에
유진하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치 아니하기로 왕의 사심과 왕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나이다
한 때
하나님의 언약궤는 초라한 장막에 머물고
자신은 화려한 궁궐에 머무는 것이 가슴에 걸려 잠 못 이루던 다윗-
그러했던
다윗이 언약궤와 더불어 영채가운데 유하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여 자신은 차마 집에 들어가 아내와 함께 잘 수 없노라고
고백하는 우리아를 죽이기 위해 아침부터 계책의 편지를 쓴다
아하
나는 요즘 어떠한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아직 셋방살이를 면하지 못하고
많은 지체들이 렌트비 걱정에 시달리며 삶의 도탄으로부터 빠져 나오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며 눈물을 양식으로 삼고 사는 이때에 나는 무얼하고 있는가?
언약궤조차 그들과 함께 유하며
그들이 힘껏 싸워 승리하기를 함께 기원하는데 나는 어떠한가?
산다는 것이 묵상이다보니
다윗의 간음사건이 터진 어제부터
내 몸 후미진 그 어느곳에 간음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필수록 깨끗하다 인정할 수 없는 나로 인해 고개 숙일 수 밖에 없는데......
그리 조심스러움도 부족해
오늘 아침엔 드뎌 사건이 터지는데
복권 명예 이전에 필요한 서류들을 빠짐없이 남편이 구비하여
붙혔음에도 저쪽에서는 못받았다며 복권을 팔 수 없도록 복권 라인을 아예 싹 끊어 버렸으니
복권 라인이 다시 회복되기까지 매상의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어려움을 나보고 어찌하라고?
허나 이내
주님께 내려 놓으니 다시금 솟구치는 감사와 평강을 인식할 수 있어 또다시
모든 선악간에 주님께 감사할따름입니다
실로
내 매상이 아닌 주님의 매상인데
그 주님께서는 친히 자신의 매상이 손실됨을 감수하면서까지
날 품고 계신다는 사실에 다시한번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돈을 사랑할까봐
돈으로 힘을 쓸까봐
벌리는 돈만큼 겸손의 내공도 쌓이고
경건의 능력도 비례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데....
그게 아니라는 걸 절감하게 된 것은 내 맘속에 호수가 어제보다 더욱 더 깊어졌기 때문입니다
뜻밖에 복권 라인이 끊기게 되는 복병을 내게 보내사
나의 주군되시는 하나님께로 포박되여 무릎끊게 되니 얼마나 편안하던지요
다윗은
그나마 밧세바 한 여인만 그 몸으로 간음했지만
나는 수많은 밧세바들이 온통 벌거벗고 목욕하는 현란한 세상을
돈과 언어을 통해 간음한 사람이랍니다
이 밧세바는
나의 학문이고
저 밧세바는 나의 재물이며
여기 밧세바는 나의 시이며
그 곁의 밧세바는 나의 사랑이라며
그리고 다른 곁의 밧세바는 나의 우정이라며
온 종일 짝하며 놀고도 정말 시간이 부족해 내일을 또 기약하며 살았던 간음녀입니다
그렇게
그렇게
수많은 밧세바와 짝하며 놀아날 수 밖에 없는
구제 불능의 음녀를 취하사 주님 손안에서 한없이 고요하게 지낼 수 있다는게
정말 기적입니다
아침 일곱시부터
복권 라인이 끊겨 소동했는데
아침 11시가 되어서야 비로서 복권회사에서 서류를 받아 한 켠에 밀쳐 놓고 있는 바람에
기한내 서류가 도착되지 않은 것으로 알고 복권 라인을 끊었다는 연락을 받았답니다
신원 조회(하루 이틀 정도 걸림) 뒤
즉시 복권 라인을 회복시켜 주겠다는 말을 들으며
저들이 하는 신원조회도 신원조회겠지만
그보다 더 바라는 것은
주께서 이 기회에 남편과 나의 관절과 혼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신원조회 하사
간음이란 간자의 찌끼란 찌끼들이 다 노출되여
나의 주군되신 하나님앞에서 처형되길 빌고 빌따름입니다
그래서
언약궤란 말만 들어도 하나님을 사모함에
어린 사무엘처럼 그 곁에서 함께 누워 자길 꿈 꾸다
결국 그 꿈을 이루어 곁에 모시고 살았던 다윗의 언약궤 시절로 돌아가길 빌고 빕니다
그 언약궤가 편히 거하지 못하고
바깥 뜰에 있다는데도 그 곁으로 달려 가지 못하는 다윗에게
언약궤는 더이상 다윗의 심장을 뜨겁게 만들어 줄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일까요?
아하
나도 더이상 주님 말씀으로 내 심장이 덥혀질 수 없다면
내 속살엔 분명 밧세바가 입혀졌고
내 혈관속엔 밧세바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세상에 이리도 끔찍한 결과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님의 피를 몽땅 다 받았는데도
주님의 피는 다 어디로 가고 밧세바의 피만 돌고 있단 말입니까?
그 밧세바의 피가
오늘 아침부터 살기 가득한 편지 쓰기를 합니다
치열한 격전장 선두에 우리아를 내버려 두고 오라는....
아하
나 역시 그런 몹쓸 밧세바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나는 부인을 하지 못합니다
영적 싸움의 치열한 전방에서 싸우고 있는 주의 종들이나 지체들을
홀로 나두곤 난 이렇게 보란듯 잘 먹고 잘 살고 있으니.......
주님과 함께 살고 죽고자 하는 자들은
언제나 우리아같은 표적이 되여 있음을 아는 내가 이런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니
인간으로 태어나 절로 피고 지는 것이 죄악이 아닌가 싶습니다
언약궤와 생사고락을 함께 할 것을 고백하는
우리아는 못되어도 그 우리아를 도와 함께 영적 전쟁을 할 수 있는 동역자는
되고도 남음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터로 보내라는
다윗의 편지를 읽으며 오늘날 가장 맹렬한 싸움터가 어디일까 생각해봅니다
오늘날도
여전히 유통기간이 끝나지 않아 계속 나돌아 다니는 욕망이란 이름의 전차 -
일단 그 전차에 올라타면 가장 치열한 전투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한다면 아예 타지 않을 것입니다
맘속으로
유인되어져 오는 밧세바를 가차없이 차버리는 훈련이야말로 경건의 단초가 되는 훈련일
것입니다
마귀는 대적해야 할 대상이지
품고 살아야 할 대상이 아닌 것입니다
아무리 영적으로 훌륭하게 아름답게 의미를 부여해주어도
밧세바는 결코 본이 되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보며
비록 밧세바처럼 감칠 맛은 없지만 언약궤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투박한 수면을 잘 수 밖에 없었던 우리아를 닮아가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