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모션이 말해주는 것
작성자명 [순정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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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9.13
어제 한국 식품점에 갔더니
송편을 팔더라고요
무디어진 추석이
행여 조국에게조차 무디어지는 것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닌지
두고온 조국을 위하여
여기서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잠시 생각해봅니다
모두들 한국의 대 명절인 추석을 보내시면서도
말씀 묵상에 변함없는 큐티엠들에게
다시한번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큐티엠으로 불러 선택해주셨다는 것에
감사와 기쁨의 춤을 출 수 있는 분들이 되길 바라며
오늘 묵상은 몇년전에 했던 묵상을 퍼올립니다
추석 한가위속에
다윗처럼 춤 출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서요
묵상귀절 -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행하매 다윗이
소와 살진 것으로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 (사무엘하 6장 - 13절)
웃사의 죽음은 다윗과 그 왕국의 모든 내각들과 장로들 그리고 백성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에 무지했던 것인가를 보여주는 충격 리포트이다
선대 왕 사울의 죽음을 자신의 이기적인 생각의 수레에 실어 보고한 자와
이스보셋 왕을 자신들의 생각의 수레에 담아 죽인 이스라엘의 두 장군들을
가차 없이 죽여버린 후 다윗은 이스라엘의 열두지파 왕이 된다
자기 생각이 그들의 생각과 현저한 괴리감이 있음을
그렇게 백성들과 신하들 앞에서 보여준 다윗이 바알레유다로 가서 궤를 메고 오려 하니
그것은 곧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고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름하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다윗이 그 궤를 모시고 옴에
하나님의 생각은 어떠하신지 혹은 법궤를 이동할시 하나님께서 주신 규례는 어찌되어
있는 것인지 묻거나 살펴보는 자세가 없었다는 것을 보며 왜 그랬을까 의혹이 일어 나는 것을
숨길 수 없다
너무 자신 있어서였을까?
나도 하나님과 늘 동거 동락하다보면 어느순간 그럴 때가 어디 한두번인가?
하나님과 호흡을 함께 하다보면 자신의 주제를 망각할 때가 한두번이 아닌데........
끝까지 못나는 것은 못난 것이고
끝까지 그 분의 은혜는 은혜인 것인데
이 못난 것 주제를 모르고 아바 아바지라 부르며
내 맘대로 행동한 것들을 생각하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다윗은 장로들에게조차 묻지 않는다
아니 역으로 어째 장로들이란 사람이 다윗에게 궤를 모시고 옴에는 여차여차한 하나님의
규례가 있나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던가?
사울 시대가 얼마나 하나님에 관한 지성물들을 소홀히 여겼는가를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충격!
그래 다윗은 자기 중심적인 생각의 아말렉 소년처럼, 이스보셋 왕을 죽인 두 장군들처럼
자기 중심적인 생각의 수레에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고 계신 만군의 여호와, 즉 진정한
이스라엘의 왕좌를 실고 오고 있으니..................
그 생각이 아무리 화려하고
아무리 아름답고
아무리 엄위하고
아무리 정선된 깔끔한 무리들일지라도
만군의 여호와 보시기에는 합당치 않음은
그가 우리들의 생각에 의하여 우주의 정사를 내놓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자기를 관리하시며 스스로 자기를 책임지시며 스스로 무엇이든 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의 자율성을 가히 측량할 저울이 없다
그런 분을 다윗은 자기 생각의 역량을 다해 끌고 오려고 하고 있으니................
하나님 보시기에 어떠했을까? 가 바로 웃사의 죽음으로 드러난다
웃사의 죽음은 이스라엘의 축복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진노였음을 기억하자
어떤 의미에서 진노만큼 하나님의 축복은 없다
그분의 진노가 없다면 우리들은 잘못된 길에서 돌아 올 수 없는 너무나 타율적인 존재들이다
아말렉 소년의 죽음
이스라엘의 두 장군의 죽음을 통해 드러났던 다윗의 생각이 있었듯이
이제 다윗은 웃사의 죽음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을 생각해야만 했다
하나님께서는 벌써 자신을 일컫는 법궤를 어찌 운행할 것인지 가르쳐주셨는데
스스로를 제한하신 그분께서 스스로를 얼마나 철저히 규제하시며 사시는 분이라는 것을
다윗은 정녕 몰랐다
이제 다윗은 알아야 한다
자기가 왕이지만 자기야말로 철저히 율례와 법도로 자기를 규제 관리하는가운데
함부로 거동하지 않아야 할 왕좌에 앉은 자라는 것을........................
오늘
다윗이 조심조심
한 걸음을 떼고
두걸음을 떼고
세걸음을 떼고
네걸음을 떼고
다섯걸음을 떼고
여섯걸음을 뗀다
누구를 위한 슬로우 모션인가?
다윗은 자신의 생각의 속도를 그처럼 늦춘다
이제 인간들을 위하여 스스로 자신을 제한시킨 하나님처럼
자신도 하나님 뜻과 생각에 의해 제한 받을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안 가시면 나도 갈 수 없읍니다
하나님께서 진실로 이스라엘을 다스린다는 보장, 즉 통치권을 상징하는
하나님 보좌를 이름하는 저 궤가 내 앞에 없으면 나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수 없나이다
내가 당신의 생각으로 철저히 관리되지 아니하면 나는 행보를 멈출 수 밖에 없는
영원히
영원히
영원히
당신만을 의지하여 사는 비천한 자임를 기억해주소서
드디어
슬로우 모션은 풀리고
빠른 템포의 경쾌한 스텝들이 여기 저기서 폭팔한다
다윗에게 자기를 진정으로 관리해주시는 만군의 여호와 왕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이다
자기가 그분의 백성이라는 것이 너무나 행복한 일이다
그속에서 어찌 춤 추지 않으랴!
나였다면 다윗보담 더한 춤을 추었을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