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찾아올지라도 멈출 수 없는 행위
작성자명 [순정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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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9.12
오래전-
남편은 자신의 전부를 주어도 좋을만큼 사랑하던 주의 종이 있었는데
어찌 어찌하다 그만 충돌과 증오의 관계로 진입해 들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증오의 강도는 마치 독과 같아
그를 골프장으로 데리고 가 골프채로 때려 죽이고 싶을 정도였다하네요
다행히 그런 자신의 감정을 속이거나 숨기지 않고
말해주었기에 나는 그 문제를 놓고 끈질기게 기도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남편과 주의 종과의 충돌 기간 내내
하나님께 구한 것이 있었다면 남편의 생명이였습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벌써 옛 이야기가 되고
지난 주일엔 바로 그 주의 종이 다시 캐나다를 방문하시여 저희 집에 찾아 오셨답니다
새벽 2시가 넘도록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다 헤어졌는데
새삼스럽게 하나님 은혜가 감사하더라고요
울 하나님
당신 아드님이 친히 십자가에서 담당하신
그 영혼의 수고를 보시고 남편의 생명을 오늘날까지
내곁에 있게 해주셨으니 정말 감사한 일이지요
웃사의 죽음을 보게 되니
남편이나 나나 내 자녀들이나 모두가 다 목숨이 아직 붙어있다는게
정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가 아니면 어림도 없는 일이라 생각되어집니다
하나님 자신이 말씀을 통해 자신을 계시해주신대로
확고부동한 하나님을 붙잡고 두렴과 떨림으로 섬기기보담은
내속에 있는 내 맘과 감정대로 흔들리는 하나님을 붙잡고 산 적이
어디 한두번이였을까?
엄밀히 말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처럼 흔들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가장 많이 흔들리는 영역이 있다면
바로 하나님과 관련된 절대적인 영역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이 역시 인간 본성의 상황 심리에 의해 하나님을 실고 다닌 것이
원인이였을 것입니다
멀쩡히 수레를 끌고 가야 하는 짐승이 날뛰는 것을 보았을 때
다윗이 아차 하고 무릎을 끊을 수만 있었어도 웃사는 죽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다윗이 그리 못하면 법궤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고 가던 웃사라도 그리했다면
그 소중한 생명을 잃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허나 나 역시
웃사의 본성처럼 무슨 일이 있으면
기도는 나중이고 즉흥적이며 충동적인 감성과 행동으로 먼저 나갈 때가 참 많지요
더구나 흔들릴래야 흔들릴 수 없는 법궤가
흔들리다못해 이내 곧 떨어질 것 같은 상황인데 거기서 무슨 이성적인 반응을 보이겠어요
그리고보니 흔들리는 것이 어디 그시절의 법궤뿐일까 싶습니다
오늘날 수도없이 흔들리는 성경과 교회는
말씀이 말씀으로 해석이 되고 해결이 되도록 확고 부동한 성경대로
성경과 교회를 메고 다닌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가치관에 성경과 교회를 실고 다닌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흔들리는 교회의 상황일수록
속과 성의 혼합적인 요소를 가미한 것은 없는지
혹은 인간적인 생각과 감정과 상황에 몰입한 나머지 말씀을 혼잡하게 한 것은 없는지
다윗처럼 거룩한 분노의 시간을 가지며 성찰할 수만 있다면
오벧에돔이 누렸던 그 복을 세상 사람들은 몰라도 믿는 이들이라면 다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웃사의 사건을 통해
다윗은 이제껏 의식하지 못했던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을 알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골리앗 사건이나 그외 망명생활가운데 역사해주셨던 하나님과
웃사의 사건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은 다른 하나님이 아니라 똑같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식했을 것 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담더
오벧에돔의 하나님 역시 그 한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는 다시한번 법궤를 자신에게로 가져오도록 추진하는 것을 봅니다
인생을 살며
무엇에 그토록 불굴의 의지를 쏟으며 살아갈 것인가?
오늘 아침 다윗을 통해 느끼는 것이 있다면
총체적인 하나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법궤를 내게로 가져오기까지
노력을 멈추지 않는데 내 불굴의 의지를 쏟아야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자신을 먼저 계시해주시기를 주저 하시지 않는 하나님
그 계시대로 온전히 하나님을 좇아가는 것이야말로 법궤를 내가 모시고 살아가는
행위라 여기며 오늘 하루도 실제로 그렇게 모시고 살았던 오벧에돔의 행위를
본 받아 살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