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서 한 마음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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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9.08
2008-09-08(월) 사무엘하 4:1-12 ‘둘이서 한 마음’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 아담을 만드시고
또 하와를 만드신 후에, 둘이서 한 몸을 이루라 하셨는데
그들은 한 몸이 되어 영적 후손을 이어가야 하는
거룩한 사명을 감당하기도 전에
둘이서 한 마음 되어 죄부터 짓습니다.
선한 너와 내가 만나도 악한 우리가 되는데
악한 너와 내가 만나면 더 악한 우리가 될 수밖에 되고
죄인과 죄인으로 만난 우리는 100%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말렉 소년은 어려서, 혼자라서 오판할 수도 있었겠지만
바아나와 레갑은 군장의 직위에 오를 정도로 연륜도 있었고
힘없는 왕이었지만, 왕국 건설을 꿈꾸며 함께 쌓은 추억도 있었을 텐데
결국 그들도,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라는
100% 죄인으로서의 인간론을 악행으로 증명해 보입니다.
죄인과 죄인이 만나 이룬 가정에서 후손을 낳으면
그 아이도 100%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가정에 예수가 들어오고 나서야 원죄와 사망에서 놓임 받지만
죄의 분별에 있어서는 조두(鳥頭)의 수준으로 설계된 인간이
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구속은 단회의 사건이지만
구원은 매일 거듭남으로 이루어가야 하는
연속의 사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구원의 그 길은 험난하여
수많은 돌부리와 웅덩이가 우리의 실족을 부추기고
좌우에는 우리를 유혹하는 먹음직한 선악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옳고 그름을 따지며
지지고 볶고 사는 게 우리네 인생인가 봅니다.
아내와 나도 그렇게 23년을 살았습니다.
들이서 한 마음 되어, 옳고 그름을 따지며 지지고 볶고...
그 23 년의 기록을 구속사로 조명해 보면
죄와 악행과 어리석음의 역사라는 단어 외에 달리 붙일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영육 간 저축도 없이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축복임을 알게 되었으니
일단 성공한 인생의 문턱에 한 발은 걸친 셈입니다.
더 울 기력도 없이 울어본 다윗만큼은 아니지만
몇 방울 참회의 눈물을 흘려봤기에 울 줄은 압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아니 영원히
한 마음 되기를 소망하며
바라보는 방향을 맞추어가고 있으니
아버지
우리 바라보는 그 곳이
언제나 아버지 계신 그곳이기만을 원합니다.
둘이서 한 마음 되어 손잡고 가되
한 손은 아버지 손 꼭 잡기를 원합니다.
잡아주신 그 손
땅끝까지 놓치 않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