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수고하는 사람들
작성자명 [박종열]
댓글 0
날짜 2008.09.06
2008-09-06(토) 사무엘하 3:17-26 ‘함께 수고하는 사람들’
‘로봇은 논리만을 추구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지만
인간은 논리와 더불어 합리를 추구합니다.’
어릴 때 이민 가서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지만
영주권을 포기하고 귀국하여 국방의 의무도 마치고
사법시험에 합격, 로펌에서 일하고 있는 어떤 변호사가 한 말인데
재기가 번득이는 말임에 틀림없지만
본문을 묵상하며
여기에 더하고 싶은 말이 생각났습니다.
인간의 행위를 논리와 합리의 틀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특히 오늘 본문의, 아브넬과 다윗과 요압의 행위를...
논리와 합리로 설명할 수 없는 세상사가 너무나 많습니다.
‘유0철’의 살인, 스님들의 시위, 동성애에 대한 작금의 논란...
인간의 지각과 예지로 판단, 해석할 수 없는 사건과 행위에 대한
유일한 대안과 희망이 바로, 구속사라 생각됩니다.
구속사는 선악 판단의 차원을 넘어서야 열리는 세상이지만
문턱이 없어서 누구에게나 개방된 세상이고
지식이 아닌 말씀의 지혜와 잣대로만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가치관이며
공기처럼, 그리스도인에게 꼭 필요한 생명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브넬의 행위가 진정한 회개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다윗은 그에게 잔치를 배설합니다.
잔치의 주인공이 되는 그의 공로는
오로지 구속사의 큰 흐름에 역행하지 않는 작은 수고 그 하나일 것이며
그 잔치를 베푸는 다윗 역시 똑같은 수고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수고로 요압의 정체성이 드러나고
요압의 작은 수고로 하나님 백성의 통일이 앞당겨집니다.
사울로, 아브넬로, 다윗으로, 요압으로 살아가는 나도
잔치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엄한 책망을 듣기도 하면서
매일 넘어지고 일어서고 또 넘어지는 수고를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수고에 낙망치 않고
수고케 하신 아버지께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내 열심으로 자청하는 수고도
구속사를 이루기 위해
이 땅의 연한 중에만 허락 받은 수고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매일 넘어지는 나나
똑같이 넘어지면서도
손 잡아주실 분 앞에서 떠나지 않기를 위로하며 중보하는
내 가족과, 말씀 안에서 하나 된 형제들 모두
구속사를 이루기 위해
함께 수고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