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놈의 가죽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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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8.29
2008-08-29(금) 시 53:1-6 ‘저놈의 가죽’
포장 이사를 하기 때문에 특별히 짐을 쌀 건 없지만
짐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어제도 몇 자루 솎아서 내다 버리고
오늘도 계속 갖다 버리면서 잠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욕심의 가지치기가 어렵듯이 손 때 묻은 짐을 버리기가 어렵고
특별히 애착이 가는 물건이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저에게는 가죽이 그런데
첫 직장의 업무였던 가죽 의류 수출로 인연을 맺고
나중에 독립하여 가방까지 취급하다보니, 그 일에서 손을 떼고도
좋은 가죽만 보면 갖고 싶고 소장하고 싶어집니다.
버려야 되나 또 끌고 가야 하나 고민을 하게 만드는 가죽 뭉치가
선반 구석에서 발견되자 아내는 진저리를 칩니다.
저놈의 가죽, 제발...( 내다 버리세요)
8 년여 전, 마지막 일본 수출 가방 원단으로 구매했다가
상태가 좋은 것으로 몇 장 남겨둔 게 지금까지 따라다닌 건데
가죽도 질기지만 나도 참 질깁니다.
당시에 잠시 나갔던 김양재 집사님 큐티 모임에
그렇게 질기게 붙어있었더라면
세상 포로의 삶에서 훨씬 빨리 돌이키게 하셨을 텐데...
얼마 전에 근본주의를 비판하는 어떤 글을 읽다가
하마터면 성경의 무오함을 부정하는
그들의 논리에 동조할 뻔 했습니다.
누님께 조심스럽게 얘기했다가 무안만 당했습니다.
‘그런 거 읽지마’
그 말속에 사랑의 권면이 있음을 압니다.
기도나 열심히 해
망해서 다 버리고 맨몸으로 이사 오면서
내가 좋아하는 건, 죽어도 버리지 못하는 육적 어리석음이나
기도와 묵상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서
활자로 된 것은 분별도 없이 믿어버리는 영적 어리석음이나
어리석기는 매 한가지인데
내가 이렇게 어리석은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니
헛되고, 실속 없는 욕심이 많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짜 부려야 할 욕심은 부리지 않은 채
욕심도 똥고집으로 부리며 살아온 내 삶의 결론이
하나하나 아픈 비수가 되어 나를 찌르고 내 죄를 보게 합니다.
이런 나를 그래도 예쁘게 봐주시는 분이 바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사실에 위안이 됩니다.
딸아이가, 친구들에게 이미 자랑했던 집으로 못 가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의외로 담담히 받아들임에
하나님이 이렇게 당신 자녀를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에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한 술 더 떠, 이사 가면
가정 예배부터 회복시키자는 말로 나를 감동시켰습니다.
저 가죽, 샘플실에 다 갖다 주고, 남는 건 공임으로 돌려
딸에게 예쁜 노트북 가방 하나 만들어주어야겠습니다.
저놈의 가죽이 모처럼 제 몫을 하려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