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져 거하는데..!
작성자명 [송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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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8.08
하만이 아하스에로 왕에게 아뢰되
한 민족이 왕의 나라 각 도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데 ... (에스더 3:8)
영화로운 나라의 부함과 위엄의 혁혁함을 나타내는 바사제국의 언어는
아직도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하스에로 왕의 나라, 희고 키 큰 사람들 속에서 이름도 없이 “한 민족”으로
흩어져 바사제국의 언어 감옥에 스스로 갇혀 견디는 데는
우리민족이 단연 으뜸일 것입니다
세계 유일 분단된 흩어진 약소민족의 나라출신, 누르스름한 작은 체구로
언어마저 안 통하니 절로 얻는 설움과 조롱을 견디고 귀국하여 “대에 올라” 들려주는
한 마디는 시원케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철저히 낮아질 수밖에 없었던 겸손과
날마다 생각했을 부모와 조국과 대한 사랑이 각별해진 마음은
돈으로 환산할 수없는 전리품이기에 젊어서는 사서 고생한 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포로의 생활을 잘 견딘 분들의 자유스러운 언어를 대할 적엔
지금도 “바사제국 드림”이
다시 마음 깊숙이에서 고개를 들곤 합니다.
‘젊은 날 바사제국의 언어를 통달하지 못하고 어찌 세월을 낭비했을꼬?...’
누가 막은 것도 아닌데, 저는 제 삶의 제비를 뽑았다고 생각했지만,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16:33)’
주님께 속한 답이 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중에 누구를 치료하겠는가고 지그문트 프로이드에게 물었을 때에
그는 부자를 먼저 치료하겠다고 한 대답은 제게 묵상의 주제였는데,
부자들은 이미 물질세계가 자신을 구원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가난한 자, 부한 자, 학력, 언어, 등 각기 종류별로 주어진 열등감을 인정하고
원래의 청결한 모습으로 회복되는 것은
오직 십자가 사랑이 아니면 날마다 어지러운 수산성입니다.
‘어지럽더라’는 단어는 요엘서의 먹을 풀이 없어 소떼가 ‘민망해 한다’(욜1:18)단어와
동일하다고 하는데 어제 오후는 집안문제와 산업처의 어지러움으로 상쾌한 답을 구하고 싶어
기도하러 산에 올랐고 그 문제를 상의하러 청하는 다른 교회를 찾으셨기에
우리들교회 수요예배를 못 들으심으로 더욱더 어지러워진 지체와 한 참을 통화하였습니다.
내려놓았다고 생각한 “바사제국의 드림”을 이루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어지러워진 지체와의 대화는 그 분이 또 저 때문에 수고하시겠구나 싶어
주님과 그 분께 미안하고 아침 눈뜨면서부터 저를 오랫동안 이렇게 기다리셨던
주님의 마음에 깊이 감사하게 됩니다.
저 또한,
아들에게 바사제국의 언어를 배워주고 싶은 마음과
제게도 바사제국의 언어에 대한 불씨로 남아있는 갈망과
휴직이 보장이 된 유학의 기회를 활용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지만,
경제적인 문제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첫 번째가 남편의 반대하는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으뜸이며
아들이 가겠다는 마음이 정하여지지 않은 것이 크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이제 남편을 많이 사랑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그 인생이 참으로 불쌍해 보이는 긍휼의 원리가 적용이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들에게도 드디어 그 인생이 참으로 불쌍해 보이는 긍휼의 원리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방학 2주 내내 아들 감옥에 갇혀 종일을 붙어 지내다가
드디어 지난 고린도전서 16장 말씀이 임한 월요일,
남자답게 강건해진 아들이
“엄마는 짐승이야!, 악마야! 알아? ” 라는 거룩한 입맞춤으로 문안해주어
내내 꼼짝 안하고 방콕하며 붙어 지낸 결과가, 아니 저를 지금껏 키운 댓가가 이건가?
분노와 절망의 끝에
죽이고 도륙하고 진멸하고 또 그 재산을 탈취할 조서 초본을 도중에 중지하고
어지러운 수산성을 회복하여 강남에서 차를 돌려 다시 집으로 향한 것은
어미로서 중한 죄를 볼 수있었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아들의 방황으로 곤고한 그 인생이 불쌍해 보이는
긍휼의 원리가 이제 임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전1:10)”사도바울의 말씀처럼 온전히 합하여진 마음이면
아무리 능력있는 바사제국의 제2의 권력자인 하만이라도 조서를 내릴 수가 있었을까요?
사실에 덧붙여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수있었으며
왕이 반지를 빼줄 만큼 마음을 얻을 줄 알았던 제2의 실력자,
전쟁으로 패한 국고의 필요를 알고 1년 세입을 채울 수있었던 재력가,
사울에게 패한 선조의 패망을 잊지 않은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자,
흩어져 한 민족으로 지금은 유랑하지만
장래의 이스라엘 민족의 보이지 않는 크고 강한 힘을 볼 수있었던 유능한 대적자,
하만으로부터 시험당하지 않을려면 가족이 한 언어를 쓰며 온전히 합하고
주님께 “묻자와 가라사대”에서
인내함으로 “이르시되” 응답받는 친밀한 교제를 회복하는 것만이
어지러운 바사왕국의 하만 대적을 품을 수있는 긍휼함의 원리임을 깨닫습니다.
하만같이 높았던 저를 품어주시고 지금껏 기다려주신 가족과 지체 공동체에
깊고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한 민족이 각 도 백성 중에 흩어져 거하는 안과 밖의 마음을 성찰하며
십자가를 적용으로 오늘도 승리할 수있기를 간절함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