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베드로 그리고 요한의 적용
작성자명 [안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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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03.23
아들 아이의 교우관계가 좋아지기 시작하면서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인가 선배형 이야기를 하면서...엄마ㅡ 형이 담배 필려다가 우리한테 들켰지 뭐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더라... 하더니....
또 어느날에는 또다른 선배의 담배피는 이야기며, 이성들과 어울려 노는 이야기며...
급기야는 어떤 선배로 부터 담배를 피워보라는 권유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해 옵니다.
요즘 학부모들 사이에 이곳 지역 학교 주변에 마약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파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서 경계심이 커져가고 있는데...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로써 참 걱정스러웠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가 그것이 유혹인줄 알고, 자기 나름대론 이렇게 저렇게 피하고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선배들과의 관계를 나쁘게 하고 싶지 않고, 또 함께 어울리다가 공부하고저 하는 의욕을 방해 받게 될 것 같아 제 나름에도 고민이 많은 모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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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세상에 대해 당당한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교훈하여 말씀하셨고,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증거하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정정당당한 삶을 사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작정하셨기에 하실 수 있으셨던 적용이었었고, 적용이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요한>은 마음 중심에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지만, 겉으론 세상과도 잘 교통하며 지내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대제사장의 집 뜰에도 들어갈 수 있었고, 심지어 베드로도 들어오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관계나 신분에 있어 유력하고 정통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베드로>...
그는 어쩌면 무식할 정도로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었을 거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비록 두려움에 예수님을 부인하는 <유약함>이 있었지만, 예수님을 따르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보면......저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야!.....라고 딱 알아볼 정도로 열열히 드러내어 놓고 예수님을 따랐던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유독 베드로란 인물만을 사람들과 종이 예수님의 제자로 알아본 걸로 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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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인 여러번 선배들의 담배권유건을 말해오면서, 나름의 고민을 말해 왔기에...
아이에게 기도하라고...선배들과의 관계도 껄끄러워지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을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조언해 주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문득 이 적용이 오늘의 <요한>의 적용인 것 같았습니다.
마음에 예수님을 품고 있으면서도 세상과 척을 지지 않는....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면서도 세상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다른말로 제가 은연중에 아들녀석에게 권했고.....그 아이가 원했던 적용도.....그런 것이었습니다. 선배들에게 싫은 소리하지 않고 유혹도 잘 넘길 수 있는...관계도 상하지 않고 담배도 피지 않을 수 있는...
어쨋든 이 적용은 <죽음>을 배수진에 친 <예수님>과 <베드로>의 적용과는 다릅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세상과 다르다는걸 아시면서도 세상이 싫어할 그것도 최고 권세자인 바리새인이 싫어할 교훈을 내어놓고....드러내어 놓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때가 되었을 때 그들에게 잡혀 주셨고, 죽임을 당해 주셨습니다.
또한, 베드로는 그런 예수님을 따르면서 그 분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임을 믿어...<생명도 내어 놓을 수 있다>라는 고백을 한 사람인 것 만큼 ...그 분이 아니라고 한 것에 대해.... 그것은 유혹이다. 지금 학생의 때에 담배는 좋치 못하다 ...라고 분명히 선배들 앞에서 당당히 <예수님>을 선포할 사람이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연인 베드로는 마지막 십자가의 순간까지 그 선언을 지켜내지 못하고, 슬쩍 감추어 버리고 말았지만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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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여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지혜>란 이름을 빌어서....<사랑>이란 이름을 빌어서....
앞으로 전도하려면 좋은 관계가 필요하다는 명분을 붙여서....
참으로 그 아인 예수를 믿어도 큰 시련없이 현명하게(?) 예수를 믿었으면, 시련보단 축복을 더 많이 받는 그런 신앙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제 자신이 걸었던 길을 돌아보며,
사람들 앞에서 작은 것이라도 <예수님>을 미리 선포해 놓으면...그후에 그 얼마나 힘든 일이 많고, 손해보고, 심지어 조롱당할 일이 많은지....
게다가 결국 마지막까지 견디지 못하고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부인하고야 마는 아픔과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는가를 생각하며...
아들아이에겐 당당히 싫다고 밝히고, 예수님의 교훈을 내어보이며 선배들에게 선한 권면을 하라는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의 적용...
혹시, 그 적용을 빌미로 좀더 편하게 세상과 타협하며 세상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예수님을 믿어보겠다는 얄팍한 마음을 품고 있는건 않은지....
요즈음 새삼 새롭게 바라보게 되는...그래서 더 편만하게 적용하게 되는 <사랑의 적용들>을 곰곰 생각하여 봅니다.
그것이 과연 요한의 적용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