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 - 화평과 잠잠함
작성자명 [이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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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7.28
질서 - 화평과 잠잠함 (7-28-08 월 / 고전 14:26-40)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33)
어지러움과 혼란은 하나님의 역사가 아닙니다.
화평과 질서가 하나님 역사의 모습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분열은 하나님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복음으로 인해 얻은 자유가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은사도 분열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화평이 깨어진 무질서는 하나님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의 질서와 화평의 회복은 교회를 회복시키는 중요한 열쇠입니다.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 (27-28)
고린도 교회 공적인 예배에 방언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원칙은 순서를 따라서 방언하고, 통역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통역이 없거든 잠잠해야 합니다.
잠잠하라는 것은 방언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통역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질서 있는 화평한 모습이 하나님 교회의 바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지니라 (29-30)
전임목회자가 없었던 고린도 교회는 여러 성도들이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때에 어떤 질서 속에서 예언해야 할 것인지를 정해 주었습니다.
말씀을 전할 때 다른 사람에게 계시가 있으면,
예언을 하던 사람은 잠잠해야 합니다.
여기서도 잠잠하는 것은 예언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순서를 알고 질서 있게, 평온한 가운데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고린도 교회를 화평하게 세우는 길입니다.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34)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것은
교회에서 한마디로 하지 말라는 것일까요?
위의 문맥(방언, 예언)으로 본다면,
잠잠하라는 것은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질서 속에서 화평한 가운데 하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앞에서 여인은 머리에 수건을 쓰고 공적예배에서
기도나 예언 (가르침)을 할 것을 허용했습니다. (고전 11:5)
복음은 인종, 성별, 신분의 차이를 폐지했습니다. (갈 3:28)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동등해졌습니다.
남녀의 차이도 없어졌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여인들은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복음이 여성들에게 자유를 주었다고 해도,
아무렇게나 교회에서 가르치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질서와 화평가운데 하는 것이 하나님의 교회의 모습이고,
모든 성도의 교회들이 그렇게 하였습니다.
여성이기 때문에 말씀을 가르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배우고 알 때까지 잠잠하게 기다려야 합니다.
여인들이 하나님 말씀에 대하여 충분히 알지 못하였기에
교회 공적인 예배에서 질문하므로 혼란을 초래했습니다. (35)
여인들이 교회에서 발언권이 생겼다고 무조건 말하고 질문하지 말고,
집에서 남편에게 먼저 물어볼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그로인해 공예배가 평온한 가운데 질서 있게 진행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남자나 여자를 막론하고 복음으로 인해 자유가 주어졌다고,
교회에서 무슨 말이나,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어지러움과 혼란, 무질서가 있는 곳이 아닙니다.
질서와 잠잠함, 화평과 배려가 있는 곳입니다.
방언 할 때, 예언 할 때, 질문 할 때에
질서와 화평가운데 순서를 따라하고,
잠잠하게 기다리며 남을 배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라,
화평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33)
이것이 고린도 교회가 배워야할 중요한 교훈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질서가 고린도 교회를 화평하게 만듭니다.
잠잠하게 기다릴 때 고린도 교회가 받은 은사가 빛을 발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하나님의 의도대로 세우기 원합니다.
혼란과 무질서가 아닌, 화평과 질서가 있기 원합니다.
오늘 혼란가운데서 화평케 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