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같은 내 모습
작성자명 [김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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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03.22
예수님 한 사람을 잡기 위해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하속들이 뭉쳤습니다.
이것도 예수님에 대한 그릇된 편견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무력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호했지만, 정작 그 분은 언제나 혼자였습니다.
주변에 자기를 옹호하고 열렬히 따르는 자들을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이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이라도 열두영 더되는 천사들을 동원할 수 있으셨지만, 십자가의 순종을 택하셨습니다.
악을 도모하기 위해 뭉치는 세상의 세력들 앞에서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워야 겠습니다.
순간의 감정이나 분위기에 휩싸여 이성을 잃고 목적도 잃어 버리는 경험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잡히는 것도 결박을 당하는 것도 적용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결박하여 먼저 안나스에게로 데려갑니다. 이것은 분명 불법적인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대제사장은 가야바입니다. 그러나 권력의 실세는 안나스였습니다.
안나스는 AD 6-15년에 대제사장을 지냈고, 그의 네 아들이 그 직을 계승했습니다.
지금은 그의 사위 가야바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시 최고의 집안이고, 대단한 갑부였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을 정결케 함으로써 그들의 축재의 원천이 위협을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혈안이 되었을 것이고, 급기야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불법재판을 열어 조작된 증거를 확보한 후에 빌라도의 법정에서 사형언도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길이 십자가의 길이기에, 묵묵히 따르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은 억울하고 황당한 일을 당해도 왜 어찜이니이까 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옳습니다 는 고백으로 순종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불법이니 적법이니가 없습니다.
이것은 환경에 무조건 순응하여 무기력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아마도 요한)가 예수님을 따라 제사장의 집까지 왔습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세번이나 주님을 부인하게 됩니다. 여종의 물음에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대제사장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대답하시는 예수님과 많은 대조를 보여줍니다.
평소엔 베드로가 훨씬 담대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부드러운 분이셨습니다. 풍채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바다에서 잔뼈를 굵은, 그리고 성격도 다혈질이고 목소리도 컸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이 무엇인지 베드로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나중에서야, 진리의 성령께서 오신 다음에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자기의 신변에 위협이 올 때, 주님을 부인합니다. 이해타산이 걸려도 또 부인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복으로 예수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자의 길은, 우리 신앙의 최고 성숙의 단계는 주님을 위해 생명까지라도 내어 놓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앞두고 땀이 핏방울같이 되도록 기도로 준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묵묵히, 그러나 당당하게 권세자들 앞에 서 계신 것입니다.
저도 자주 주님을 부인하며 살아갑니다. 사소한 내 감정 때문에 주님을 부인합니다.
내 자존심때문에 주님을 부인합니다. 누가 나를 건드리기만 해도 발끈하며 주님을 부인해 버립니다.
너무나도 그럴듯한 이유들을 내세워 주님을 부인할 수밖에 없는 핑계들을 만들어 냅니다.
저는 목회자의 길을 걷는 것이 나를 부인하고 주님을 따르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것을 포기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어떤 면에선 그렇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내 속에 내가 주인으로 자리잡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 많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베드로처럼 주님을 부인하는 모습들도 있습니다. 이것만은 안돼 하면서 고집피우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네가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닭울음 소릴 들을 때마다, 그 말씀이 생각나서 베드로처럼 통곡하며 자복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주님처럼 어떤 세력들 앞에서도, 나를 모함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나를 까닭없이 치고 때리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당당함과 부드러움으로 설 수있으면 좋겠습니다.
내 삶의 분명한 목적과 방향이 있기에 뒤를 돌아보지도, 옆을 돌아보지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만 바라보면서, 주님이 이미 날 위해 지신 십자가를 나도 지고 주님만을 따르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