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구하는 신령한 것 성경속의 예언
작성자명 [김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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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7.26
예언을 생각해 봅니다
애당초에는 사울이 나귀를 찾기 위해 찾아간 것 처럼 일상생활에서 시작 되었고
보통 이스라엘 민족의 장래와 집권상류층에 대한 하나님에 대한 도덕적이고 종교적 교훈이었다
하나님의 영감에 의하여 선지자에게 내려진 것을 보면
영감이란것에 대해 살펴야 하는데
그 뜻을 어떻게 나타내셨나
그들의 영감은 무엇에 포함되었을까
예언자들의 정신적 능력은 어느정도인가 그 정신과 능력은 어떻게 강화되여 진행되고 또는 중지되고 또는 점차 커져갔는가 살펴보아야
나도 예언을 구할 때 도움이 되겠지요
또는 거짓 선지자들의 예언도 어쩌다 몇번 성경에 등장하는데 마귀가 그들의 입에 들어가 그들도 사실로 알아 속도록 사실인 것처럼 그 선지자들의 입을 주장하도록 하는 것도 성경에서는 보인다
결국 거짓 선지자가 되고 말지요
마귀가 주는 예언도 현실적으로 반듯이 틀렸다고 볼 수 없고 오히려 그당시 암담한 현실에서 오히려 소망을 주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와는 완전히 다른 상반된 별개의 것이라는데 있지요
또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신이 임하는 대로 반듯이 하지 않았던 것들도 군데군데 성경에 등장한다
신명기에서 최고의 선지자로 일컫는 모세도 출애굽기에서 모세는 삼십이장에서 하나님께 불평을 올리기도하고
그의 부르심에도 거역하며
자기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시라고 항의하고
아모스도 여호와의 뜻을 돌이키시기를 구하여 성취했고
예레미야도 불가능한 예언의 책임을 맡기셨다하여 불평한 것을 보면
요나에서도 또 여러군데에서 그 예언적 사명을 받고 오히려 피하거나 했던것에서 볼 때
예언자들이 하나님이 내려주신 예언에 대해 기계적으로만 순종해 나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신인 합력으로 성취하도록 하시는 것을 본다
다시말해 인격적으로 만나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정작 중요한 것이 메시야 예언이겠지요
주전 이백년에 많은 예언이 임했지요
그러나 세례요한의 예를 한 번 보면 좀 생각해야할 것들이 많이 있지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라 하는 예수의 길을 예비하고 그가 오실 때까지 사역해야하는 세례 요한이 세례와 더불어 천국이 가까왔다고 선포하며
개종하는 이방인에게만 행했던 세례를 이제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하여
자기의 죄를 하나님께 회개하여 천국을 향해 거룩케함으로
장차 올 진노를 피하기 위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하고 누가복음에 기술되고
장차 오실이의 세례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줄 것이다라는 예언을 하며
다른 복음서에 등장한 기사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려 세례요한 그앞에 나섰을 때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어린양이라 예언하듯이 예수께 내가 세례를 받아야 할터인데 내게 나오시나이까하며 예수의 사역을 알고 예언하였던 세례요한이
나중에는 감옥에서 예수께 제자를 보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까로 묻는 것을 보면 영감이 사라져 버린 것을 볼 수 있다
그 뿐이랴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까지 알았던 세례요한이 요단강가에서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되었는 것을 알고도 다른 쪽에서 세례 요한도 사역을 계속하고 있는 것을 성경에서 봅니다
그러기에 제일 큰 자라 일컬음을 받던 세례요한이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보다 더 작다고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봅니다
심지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가 광야에 왜 나갔냐고 묻고
바람에 날리는 갈대를 보러 나갔느냐고까지 하십니다
왕궁의 부드러운 옷을 보러 나갔느냐고까지 말씀하시기까지 합니다
이렇듯 예언도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주시지만 그 사명이 끝나면 소멸되는 것도 알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예언을 사모하되 진정한 마음으로 주님께 초점을 맞추고 있어야만 되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부분적으로 알던 것들이 주님앞에서는 확연히 들어난다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이 사랑으로 구하였기에 예언자가 사랑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돌이키시기를 원하고 불평을 해도 주님께서 인격적으로 만나 주시고 계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러므로 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따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데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하십니다
그렇다고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운다는 것은 방언을 하지말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미처 기도하지 못한 것이나 미처 회개를 채 못한 것이나 또한 예언적 성격의 그 비밀을 주님께 고하는 것인데
그러므로 사랑을 따라 신령한 것을 구하는 속에 있지요
단지 공개적 단상에서나 공개적 개인의기도에 통역하는 자 없이 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단체기도 통성기도에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 기도하는데 그것이 방해가 된다고 한다면 오히려 큰 목소리로 우리말로 기도하는 것이 더 방해가 된다는 논리가 등장하게 됩니다
통성기도에 옆사람의 기도가 신경쓰인다는 것은 자기의 기도가 온전히 드려지지 않고 있음을 뜻합니다
주님이 주신 것을 잘못알고 격하 시키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 경우는 방언 달라고 떼를 써 목청껏 기도했던 것은 묘하게도
내 죄가 워낙 많고 심각했기에 내 죄를 고백하기위해 달라고 떼를 썼지요
누가 들을까봐 너무 비밀이 많아 일대일 고백을 해야겠다고 떼를 썼더니 주시더라고요
나중에 누가 내 방언을 통역하는데 내 머리속에서 생각하며 기도하는 것과 영 엉뚱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기도를 방언으로 성령의 도움으로 향기롭게 고하는데
방언이 정작 필요합니다만
기도하시는 분 중에 한국방언도 있읍니다 그것은 방언인지 그냥 기도인지 분간이 잘 안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