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베드로
작성자명 [김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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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03.22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한 사건은 익숙한 내용이다.
하지만 언제봐도 가볍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나라고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1. 무엇이 베드로를 부인하는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다. 그리고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는 고백을 통해 반석(게바)이라는 칭호도 얻었다. 예수님을 따라 물 위를 걷기도 했으며, 절대로 부인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을 했던 사람이다.
그런 베드로가 3번이나 부인을 했다. 왜 그랬을까?
1) 기대감의 상실
배를 버리고 따라갈 정도로 예수님에 대한 기대가 컸다. 예수님께서는 병든 자를 고치시고, 기적을 보여주시고, 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교를 하셨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일종의 특권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잡혀가셨다. 화려한 영광이 아니라 초라한 사람의 모습으로 잡혀가신 것이다. 기대감의 상실이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예수님께서 말씀만 하신다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인데...
기대감이 상실될 때에는 믿음이 약해진다. 작은 충격에도 무너져 버릴 수 있는 연약한 상태가 된다.
2) 위험한 상황
예수님의 잡혀가심은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말해준다. 자칫 잘못하면 자신의 생명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위험한 환경이 결코 부인하지 않으리라 는 베드로를 약하게 했을 것이다. 계집 종에게도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말이다.
3) 잘못된 믿음의 기초석
베드로는 확신했다. 예수님을 배신하는 상황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예수님의 수제자이기도 하고, 바다 위를 걸었던 경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인했다. 믿음의 근거가 자신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사자굴 속에 던져진 다니엘의 모습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누구든지 믿음의 근거를 하나님께 두지 아니하고 자신에게 두는 자는 그럴 수 있다.
2. 세 번의 부인이 베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닭 울음 소리는 그를 철저히 무너뜨리는 소리였다. 자신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들려주는 소리이었고, 믿음이란 과거의 확신이 아닌 현재의 일이란 것을 일깨워 주었다. 과거에 믿음 좋았다는 것이 현재도 믿음이 좋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믿음의 기초를 자신에게 두었을 때에는 아주 작은 사건에도 부인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닭울음이었던 것이다.
3. 사명을 따라 사는 예수님과 환경에 따라 사는 베드로
예수님께서는 사명을 따라 잡혀가신 것이다. 그리고 기꺼이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당당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본다. 반면에 베드로는 자꾸만 작아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환경에 따라 반응하는 베드로의 모습이다.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에는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였지만, 위험한 상황에서는 계집종도 피해가는 졸장부가 되어 있다. 환경에 따라 믿음이 달라지는 사람의 모습을 본다.
4. 나는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주님의 은혜로 간증이 되는 일
베드로가 가장 싫어하는 음식은? 삼계탕
베드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생선구이 ( 강길 생각!)
닭울음 소리는 베드로에게 아픔을 주는 사건이었만, 부활하신 예수님과 먹었던 생선구이는 상처를 싸매주는 일이었다. 나의 아픔을 은혜가 되어 간증이 되게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그러기에 닭울음 소리는 베드로가 베드로가 되게하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말해준다. 감사와 찬양을 드릴 일이다.
5. 베드로 속에 있는 나의 모습
베드로 속에 있는 나의 모습을 본다. 기대감이 상실되고, 위험한 환경 속에 있는 나를 본다. 그래도 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나였다. 하지만 기대감을 가지고 있던 교회에서의 상실감, 기대하고 만났던 사람과의 깨어짐, 하나님 안에서의 풍요로움을 기대했던 시간들... 하지만 지금은 상실감만 남아 있다. 새로운 마음을 갖고자 하지만, 늘 제자리인 나의 모습에서 나의 연약함을 본다, 나이는 먹어가고, 어려운 환경은 계속되어진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약간의 두려움도 있다. 지금의 현주소인 것이다. 그래서 나눔을 올리는 것도 그만두고 싶고, 교회도 옮기고 싶다. 누구를 만난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도 갖고 싶지 않다.
실망과 좌절감에 빠져있는 제자들과 생선구이를 먹는 예수님의 은혜가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없다면 난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베드로의 아픔이 예수님의 은혜가 되었듯이, 나의 아픔이 예수님의 은혜가 되어 돌아오길 기대한다. 하루라도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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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있을 때는 몰랐다. 그래도 잘 견디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을때에 나의 경직된 모습을 보았다.
굳어진 얼굴 그리고 자신감을 잃은 것 같은 움추림!
그것이 나의 모습이었다.
베드로가 혼자있을 때에 자신감을 가졌을지 모르지만, 그는 군중 속에 숨어버렸다.
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다.
연약한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다.
지금의 난
움추림의 모습과 비전이 분명해지는 양쪽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마음 속에서 내가 해야할 일들이 분명해 지고 있다.
무너짐의 시간과 세워짐의 시간을 동시에 맛보고 있는 것이다.
절망의 때와 희망의 때를 함께 겪고 있는 것이다.
기회의 시간이다.
베드로의 패배가 패배가 아닌 디딤돌인 것처럼
나의 패배도 패배가 아닌 디딤돌이 될 것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