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고 싶다.
작성자명 [박동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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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7.23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고린도전서12장3절 2008/07/23
나는 왕 사울을 이해한다.
그와 같은 연약한 심령이기 때문이다.
왕이신 하나님의 관심도 구하지만
사람에게도 사랑 받고 싶은 맘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관심을 초월한 이가 과연 사람일까...?
사람들에 대한 의식함이 전혀 없음이
과연 신령함의 증거일까...?
1985년도 12월,
예수를 알지 못하는 재수생의 신분으로
다시금 1차에 불합격 통지를 받은 나에게는
절망스런, 어쩔 수 없는 가난한 심령이 흘러넘쳤다.
처음으로 교회를 다니기로 작정한 곳 S교회에서
첫날 새 신자교육과 함께 주님 영접기도를 한 후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
이후에 알게 되었지만
그 당시 몇 몇 교회는 방언의 은사만이
성령의 임하심의 증거라는 신학적 근거로 채택한 곳이 있다고 하였다.
S 교회도 방언에 관한한 그런 분위기였다.
첫날 영접 후
나의 친 누님의 친구이자
힘 있는 장로님의 딸의 권고덕택에
교회의 편집실에 들어갔다.
서울법대, 고대법대, 연세대 정외과, 이화여대 등...
재수생의 신분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너무나도 주눅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그곳 편집실을 동경하였지만
쉽게 자리를 내어 주지 않았다.
군대 가지전 까지 2년간 있는 동안
서울대, 고대, 연대 출신들의 청년들이 문을 두드렸지만
모두들 배척당했다.
아니 철저한 헌신! 광 열심 있는 신앙!의 요구들을
그들은 감당하지 못했다.
내 나이 겨우 약관
겨우 대학에 입학한
세상에서도 교회에서도 신출내기인 나의 관점에선
편집실의 멤버들은 변화산상의 모세와 엘리야 같았다.
그 좋은 학벌로
세상의 영광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오직 교회에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그들은
이해의 차원을 넘어 경외의 대상이었다.
내가 그곳에서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순진해 보이는 나의 외모와
시키는 일에 군소리 없이
잘 순종하였기 때문인 것 같다.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고 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지 못하고 깨달음도 없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지 못한 나에게는
다만 사람 눈에 좋게 비치길 원하며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칭찬 듣는 것이 좋아서
나의 열심을 바쳤다고 생각한다.
예배 때나 부흥회 때
성도들에게 일어나는 신비한 이적
(병 고침, 능력 행함, 예언함, 영들 분별함,
각종 방언 말함, 방언들 통변함,
귀신을 쫓아냄)등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아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충분한 유혹이 되었다.
23년의 신앙생활을 맞으며
이제는 진정한 순종을 위한
하나님과 의 깊은 교제를 원한다.
다윗이 목동으로서
아버지와 형제들로 부터의 무시를 당하는 가운데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과
끊임없는 사랑을 나누며
신뢰의 관계를 맺어감으로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을 받은 후
40년의 생사의 도피생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나 또한 이 고난의 생활 이전에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기 원한다.
왕 사울이 별다른 고난에 대한 해석이 없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졌기에
그는 하나님과의
일반적 약속관계에만 익숙하였다고 본다.
그러므로 맡겨진 일에 대한
결과적 충성만을 생각하였을 것이다.
다윗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림은
턱없이 부족하며 어쩌면 전혀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나는 “말씀의 지혜와 지식과 능력을 주시옵소서”라고 부르짖는 교회를
학부 때 3년, 부산에 지교회가 세워지고 7년, 도합 10년간을 다녔다.
그러므로 모세의 율법이든,
예수님의 온전한 율법이든
말씀들고 충성을 강요하는 이들을 보면
맘이 강퍅해 진다.
이 또한 내가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이지만...
나는 그 교회의 교인상으로 모범적이며,
비교할 수 없는 열심 당원이었다.
이제 그 교회를 떠나 온지
1년 반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히 구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예수를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 되심을
맘껏 소리치고 싶음을...
그러한 은혜를 충만히 누리는 것을 체험하기 까지
나의 아내가 율법과 복음을 들고
나를 닦달하지 않기를,
다윗이 사울을 끝까지 참아 주었던 것처럼...
남편에 대하여 오래 참음으로
나에 대한 주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기를
간절한 맘으로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