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예수
작성자명 [김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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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7.15
우상은 예배하는 대상을 형상화시킨 것을 말하는데 확대해석하면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대상을 뜻하기도 한다
할례의 의미로는 구별된 백성을 뜻할 수 있다고 보면
이제 그저 의식적인 할례를 통해 세상과 구별되어진 것을 폐하고
이제 마음의 한 가운데 새겨지고 찢어져 각을 뜬 할례를 말하는 것으로
입으로만 오직 예수 말씀이라는 것을 폐하고
성령이 임하고 참된 예배자가 되면 자연히 이웃에게 작은 예수인 내가 탄생하여야 되는 것이 마땅하거늘
우리는 늘 소경이고 귀머거리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이제는 두렵다
이 육의 눈으로 바라보는 선악과를 먹음의 결과로 내 눈으로 탐스럽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기도할 만큼한 것으로
대상을 삼아 시대에 따라 필요에 따라 만든 우상으로 섬기는 무리가 되어가는 것이 늘 두렵고 부끄러웁다
늘 세상에서 거치는 돌이 되어야 함인데도
내 육의 눈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에의 끝없는 추구와 늘 필요란 핑계로 추구하는 부의 충족에 대한 추구와
자녀에 대해서는 교육이란 빌미로 실상은 돈버는 수단으로 명예와 권력을 위한 예비수단으로서의 학교 선택과 성적의 등급에 집착하여 학교뿐이랴 학원과 과외에 여건만 허락된다면 집착하는 것이 모든 부모 대다수일진데
크리스챤이라고 별의미를 둘 수없는 현실이다
죄의 오픈 또한 본인 스스로의 결단으로 성령의 인도함에 의지하여 가차없이 떠나야하는 고통을 수반하지 않고서는
죄의 고백은 그저 음란물일 수 밖에 없다
이미 오픈하기에는 이미 큰 결단으로 이미 수치스러운 십자가를 이미 많은 사람앞에서 지어서 처형장으로 골고다에 도착했는데
이제 못박히는 곳에서 멈추어서는 안되지요
참고로 죄에서 자유란 이 고통을 주님이 같이 감당해주시기에 주께 의지하고 의뢰하여 그 같이 감당하는 기쁨이 죄에서 자유인 것이지요
이것이 할례가 필요없다는 바울의 주장이고
우상에게 바친 그 음식에 그 시대에 그렇게 뿐이 먹을수 밖에 다른 길이 없는데도
그저 약한 자가 실족할 것 같으면 평생 먹지 않겠노라한 바울의 결단과 고백을 보면
죄의 오픈 고백이 이미 결단된 마음으로 모든 수치를 무릎쓰고 이루어졌다면
그 결단이 이행으로 이어지지않고 그저 겉도는 반복적인 같은 죄만 고백한다면
이는 같은 죄를 범하고 자유치 못하는 성도에게는 매우 동질적인 구별된 할례의 백성으로 모여질지 모르나
죄의 오픈으로 큰 결단을 했고 죄에서 자유의 큰 결단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어야만 하는데
오히려 그냥 하라기에 하고 남이 하니까하고 그 자체를 내세우기 위해 하여 우상으로 남겨버린다면
그저 오픈만하면 죄의 힘이 사라진다는 것만으로 오픈하여
그 죄의 오픈을 의식적인 할례나 그 죄의 오픈만하면 그 죄가 없어진다는 식의 우상으로 섬겨버린다면
사도바울의 추구하는 작은 예수 사랑의 마음과 함께 실천하는 예수
이 세상에서 거치는 돌이신 예수 으깨어 버리시는 예수를 향한 그의 결단과는
역행하는 것이 될 수 밖에요
그저 눈만 뜨면 음란이요 우상이요 탐욕이요
그냥 유통하는 돈도 어느덧 자본주의에서 실세가 되어 그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현실에서
패션도 건강도 상업도 이외에도 많은 보이는 것에 대한 우상의 열심속에 세상은 움직이고 있어도
구원하신 백성을 곧바로 천국으로 보내 살게하지 않으시고 이 올가미속에 남겨두어 세상속에서 섬기며 실천하고 사랑하라고 하신 그 뜻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오늘 생각하게 하십니다
불의한 청지기란 예수님의 비유에서 보듯
모든 하나님의 재물을 선택된 청지기가 불의로 소비하는 것은
이 땅이 죄로 우상으로 만연이 되어있기에 죄와 호흡할 수 밖에 없음에서 불의한 청지기이고
그래서 이제야 #51922;겨날 것을 알아채리고
천국을 미리 예비하는 자세로 이 죄로 인한 세상에서 같이 구원해야할 친구들을 찾아 베풀며 나누며 사랑으로 구원을 이룰때
그 주인 즉 하나님조차도 지혜롭게 행했다고 말씀하시듯
사도바울의 고백을 통해 우리 또한 작은 예수가 되어
이 죄악된 세상에서 의식적으로 눈에 보이는 할례나 의식적으로 눈에 띄는 우상을 버리고
결단으로 주님앞에 나와야함을
나 또한 고백합니다
이제 도와주시옵소서
이 연약한 의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