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 유리그릇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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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7.11
2008-07-11(금) 고린도전서 7:1-7 ‘반상, 유리그릇’
지난 주일에 교회에서, 어떤 주제를 놓고
지체들과 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그 때 토론의 주제가
‘자기 부인이 과거 바람피운 사실을 오픈할 경우
호세아 같은 마음으로 용납할 수 있을 것인가’ 였습니다.
오늘 본문, 남편과 아내의 의무를 묵상하며
그 때의 토론이 떠오른 건, 당시 밝히지 못했던
내 생각의 핵심이 남편의 의무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의무를 다하지 못한 남편이
어찌 아내의 허물을 문제삼을 수 있겠습니까.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울 거라고 말하는 지체들이 부러웠고
아내가 그런 과거를 고백한다면, 부채를 상계 처리하듯
나의 멍에 하나를 벗을 수 있을 것이라는 유치한 생각을 했습니다.
거듭나지도, 믿음으로 바로 서지도 못한 상태에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지체들의 고백에 편승하여
2 년 전, 양육 숙제를 하느라 가족들에게 고백한 일로
온 집안에 난리가 난 후 저는 외계인이 되어버렸습니다.
문화가 다른 교회에 다니는 딸은 그렇다 쳐도
아내나 아들까지 감당하기 힘들어 했던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그 고백이 성령의 인도하심이었는지, 내 열심이었는지
지금도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그 때 깨달은 건
사실이 아니라고, 끝까지 내가 변명해주기를 바랄 정도로
아내의 가슴에 패인 큰 상처가 아물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내 열심으로는 그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이후 내 입은 굳게 닫혔고
예배 간증에 나서라는 사역자님의 권유에 손사래를 쳤다가
교만한 사람이라는 핀잔을 들은 일도 있었습니다.
남편과 아내, 의무의 반상 위에 놓여진 신뢰의 유리그릇은
한 번 깨지면 다시 붙일 수도 어디서 빌려 올 수도 없기에
유리그릇에 담으라 하신
부부의 사랑을 오래 오래 맛보기 위해서라도
상을 엎는 일은 없어야 하는데
지금도 툭하면 상을 엎어 그릇을 깨곤 합니다.
이제 깨진 그릇을 붙이고 싶지만 내 힘으론 할 수 없음을
또한, 그 일을 해주실 분은 예수님뿐임을 잘 압니다.
고난 받으며 십자가에 붙이신 당신의 죄 패에
함께 적은 나의 죄까지 안고 가셨기에
나를 믿어 거듭나기만 하면 그 일은 내가 해 주마 말씀하시는데
질기고 단단한 자아의 껍질을 깨고 나오기가 무척이나 힘겹습니다.
이제라도 의무의 반상을 받치는 다리 되기를 자처하여
깨어진 신뢰의 유리 그릇을 붙여주실 것을
온전히 주님께 의뢰하는 남편
그래서 아내에게 십자가를 회복시키고
그 십자가까지 대신 지는 남편 되기 원합니다.
여름 방학을 맞아 늦춰진 영업시간 때문에
해가 높이 뜬 지금 이 시각에도
꿈속에서 안식을 누리고 있는 아내가
눈을 뜨고도 평강과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아버지께 간절히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