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지체는 아직도 모르고 있을 겁니다.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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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7.09
2008-07-09(수) 고린도전서 6:1-11 ‘그 지체는 아직도 모르고 있을 겁니다.’
7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말씀대로 살기가 힘든 이유를 본문을 통해 봅니다.
상대방의 불의를 입증할 증거가 있는데도 불의를 당하고 속고 말라니...
사람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사랑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라는 목사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사람을 대함에 사랑이 아닌 믿음을 앞세우는 건
그 사람에게서 나의 유익을 바라는
세속적 기대심리가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거저 주는 사랑이 아니라
받을 것을 전제로 하는 거래를 하다가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가차 없이 법정을 찾아 송사를 벌이는 일은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신분으로 맺어진
말씀 안에서의 형제, 즉 성도 간에도 예외가 아님에
본문을 통해 바울 사도가 전하는 하나님의 권면은
비즈니스를 최고의 직업으로, 돈을 우상으로 살아온
오늘의 고린도 교인인 내게 뜨끔한 지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후일, 마음의 상처가 되거나 송사로 이어질 수 있는 일이라면
성도 간에는 애당초 도모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에 교회의 어떤 지체로부터
동그라미가 여섯 개 붙는 큰돈을 잠시만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나에게 기대하는 마음에 대한 기쁨과 당황스러움을 동시에 느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사랑의 마음으로 솔직하게 거절하지 못하고
노력해 보겠다고 들어줄 것처럼 말해놓고는
아내 핑계를 대며 거절하는 구차한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교회에서 서로 눈에 띄는 일이 거북한 관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며 그 때 일을 다시 곱씹어보니
그 지체가 그런 부탁을 어렵지 않게 하도록 만든
겉 다르고 속 다른 내 모습 그 자체가 죄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지체의 눈에 비친 나는, 경제적 능력이 있건 없건
자신의 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서먹하지 않게 대할 수 있는
그런 솔직한 가슴과 따뜻한 심령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아주 편한 마음으로 그런 부탁을 할 수 있었겠지만
나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님을
그 지체는 아직도 모르고 있을 겁니다.
그 지체는 돈 구하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을 내 모습을 그리며
지금도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런 이중적인 모습이야말로, 지체를 실족시키는
연자 맷돌 깜 죄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도 간의 송사도 막아야겠지만
더 중요한 일은
성도 간에는 사랑을 주고받는 일 외에
어떤 거래도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 듦에
오직 사랑을 베푸는 일에 금전도 아끼지 않는
그리스도인 되기를 아버지께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