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역주행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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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7.07
2008-07-07(월) 고린도전서 4:6-4:21 ‘구원의 역주행’
목장에 새로 온 어떤 지체의 어린 딸에게서
심각하지 않은 다리의 혈관계 질병이 발견되었을 때
다니던 교회를 옮겨 벌 받은 것이라는
어머니의 정죄로 그 지체가 힘들어 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교회를 옮겨, 친구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하던 중
부정맥으로 쓰러져 거의 9 개월째 의식이 없는 아들을 둔 어떤 집사님은
그 일을 온 가족의 구원을 위한 구속사의 사건으로 해석하신다며
아들의 회복을 비는 소망보다, 아들을 구속사의 주인공 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제 목사님은, 목자 회의석상에서
설교를 통해 깨달은 말씀의 지혜와 교훈을 나누는
어떤 목자의 은혜로운 나눔을 들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인본적인 관점에서 생각해야 해석되는 일이 있고
인본적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일도 있습니다.
아들이 의식도 없이 누워 있는데 감사한다는 어떤 아비나
성도가 말씀을 잘 깨닫는다고 눈물을 흘리시는 목사님을
인본적으로 어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그런 일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10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그 모두가 ‘그리스도의 연고로’ 가능한 일인데
그리스도의 연고로 일어나는 일은 바보 같고 미련한 일이라 하십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기를 원하고
말씀의 눈으로 내 죄가 아닌 세상을 보며
나를 높이기 위해, 내 죄가 아닌 남의 죄만 보려 합니다.
정욕과 명예와 이생의 자랑에 눈 감을 때
세상을 향해 깊이 잠들 때
돕는 자, 에제르를 허락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아직도 세상을 향해 눈을 부릅뜨고
탐욕의 시선으로 세상을 훑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아버지 앞에 매일 죄지으면서도
미련한 회개보다
지혜로운 변론을 위해 세상의 말과 논리를 찾고
진실하지 못한 언어의 향연으로
나를 포장하기 좋아함을 고백합니다.
이제, 세상의 미련한 자였던 내가
그리스도의 연고로 지혜로운 자 되기를 꿈꾸는
구원의 역주행에서 벗어나
구원의 참 뜻을 가슴으로 해석하며
세상에 눈 감고 깊이 잠드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한 자 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