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평강에 이르게 하소서
작성자명 [장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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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03.17
요 16 :30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서 나오심을 우리가 믿삽나이다
주님은 참으로 놀라우신 분이십니다.
그토록 오랫동안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냥 교실수업만을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현장학습을 시키셨고, 때로는 역할교육을 시키셨고, 늘 예수님 곁에 머물게 하시면서 공동체훈련을 시키셨습니다. 그런데 이제서야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노라 고백합니다. 아마 이런 말을 우리가 듣게 된다면 우리는 기뻐하기는 커녕 도리어 힘이 빠졌을 것입니다. 이제 겨우 믿겠다고 말하다니...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사역 자체가 힘 빠지는 일들 뿐입니다. 25절은 기도에 대한 교훈입니다. 이 교훈의 요지는 이제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게 되었음을 가르치십니다. 물론 이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자초지종을 일일이 알리는 일이 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역할이 축소된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잘 길러서 다른 분에게 준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사역자체는 사실 여러모양 힘을 내기 어려운 사역입니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그렇게 키운 제자들이 예수님의 곁을 떠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요 16 :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아마 이쯤되면 여전히 세상의 것이 남아있는 우리들은 원망이나 불평으로 사역을 접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직접 해보지 않으셔서 그렇지 너무 힘든 일이라며 하나님까지 원망했을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이 정도는 기본으로 해야할 일이라고 누누이 일렀으나 도무지 그 기본이 안되는 일을 수년째 만나고 있습니다. 그것도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 위치의 사람들이 그렇게 할 때는 사실 속이 상합니다. 물론 제가 손해볼 일은 아닙니다. 목사의 일이란 것이 선지자의 소임과 같아서 부르짖으면 일차적으로 그 역할을 다한 것입니다. 또 이렇게 가르쳤음에도 불순종하는 것은 그 당사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회계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가르치는 목사에겐 아버지 마음이란 것이 있습니다. 시시비비를 가린다고 그래서 제가 옳았고 그가 틀렸으므로 그에게 벌이 임할 것이라고 속이 시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목사의 속은 타다가 마침내 무너지고 맙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는 말씀 앞에서 너무도 큰 차이를 느끼는 것입니다. 무엇이 이처럼 다름을 만들었을까요? 요 16 :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예수님은 아버지와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성부 하나님 역시 예수님과 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두 분은 두 분만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 위로와 기쁨 가운데 계셨습니다. 바로 믿음과 교제 안에서 누리는 평안이 답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엄청난 차이가 발생한 것입니다. 주님은 아버지와의 교제로 모든 것이 만족이었고 위로였습니다. 그래서 항상 지치지 않으셨고 십자가 앞에서도 여전히 행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저는 아버지만으로 기뻐하는 일에 지극히 미약한 존재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치 아들의 궁둥이를 닦아주면서 아들에게 아빠 좋아 라고 묻고 아들이 아빠 좋아요 라는 말을 들으면서 행복해하는 그런 기대로 목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목사가 수고하는 것이 보이시죠? 그래서 늘 제가 고맙죠 라는 기대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물론 이것이 나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서로의 수고에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성도의 좋은 교제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어느샌가 아버지만으로 만족해야하는 중심에 다른 것이 끼기 시작합니다.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이 묵상 때문에 33절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 16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지금까지 이 말은 언제나 세상을 이기신 주님을 믿고 우리도 승리하자는 결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가르쳐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나를 믿고 세상에 나가 싸우면 평안을 얻는다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신 것은 아버지 한 분만으로 누리는 평강에 관해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평강의 첫 모범자로 예수님은 세상에서 승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저에게 가르쳐 주시는 평강은 하나님 아버지 안에 온전히 거하는 평강입니다.
오늘 저는 목회현장에서 여전히 불순종하며 목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이들을 잊으려 합니다. 대신 그 자리에 아버지 하나님과의 만남과 그분과의 교제로 얻은 평강을 채우려고 합니다. 그 평강이 내 맘에 가득차면 분명 다른 눈으로 사람을 쳐다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회가 진정 사랑으로 역사하는 목회일 것입니다.
주님 바로 그 평강에 이르게 하시고, 그 평강으로 아골골짜기를 지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