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스 아기스 나의 아기스여!
작성자명 [순정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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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6.27
시편 4편에 보면 다윗은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대해 주신 하나님을 잊지 못하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아기스 앞에서
심중의 말은 끝내 묻어둠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 중에
자신과 아기스의 문제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다른 사람들과의 역사성에 의해
너그럽게 빠져나오는 것을 살펴보며
나도
내 가장 곤란했던 날들을 생각해보렵니다
그렇게 곤란했던 날들을 살펴보는 목적은
그러한 중에 나를 몹시도 너그럽게 대해 주셨던
하나님을 찾아내기 위해서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을 찾으며 그분의 응답을 기다렸지만 끝내 침묵하셨던 것처럼
내게도 그러할찌라도
나는 이미 그분의 특별한 권능으로 만진바되였고
사랑받은바 된 그 청춘의 때를 기억하고 추억하는바
그분 역시 나를 기억하며 추억해주시리라는 그분를 향한 이 확고한 신뢰성은
여전하니 그가 영원치 침묵할지라도 나는 그를 찾는 이 행위는 결단코 멈출 수 없는 것입니다
그가 침묵할수록
나의 찾는 바는 더욱 더 깊어지고 높아지고 넓어질 것이며 영원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곤란함은
물질로부터도 아니고
건강치못해서도 아니고
지역 교회를 섬기다 어쩔 수 없이
남편의 동생이 개척한 교회로 옮겨
신앙 생활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는 곤란한게 아니라 너무 좋은 것인데 그게 곤란함이라니
내 속만 좁아보이는 것이지요
그래 그 누구에게도 내 심중의 말을 할 수 없다는 것
나를 상담해주고 지도해주어야 할 목사 부부가 동서요 서방님이시니
더 더욱 그런 말은 못하는 것이고
또한
남편이 그러하고
시모님이 그러합니다
더구나 남편은 장로로써 목사인 동생을 잘 받들어 섬겨야 할 사람이니
무슨 말을 어찌 하겠습니까?
다윗이 아기스와 더불어 살아갈 때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이였을까?
아기스가 그리도 다윗을 칭찬하는데도
다윗 스스로 자기 자신의 어떠함을 잘 암에도 그 자신의 심중을 펼쳐보일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어떠함을 알고 있었는데
그 어떠함이 바로 자신이 아기스 앞에 얼마나 위선자로 살아가고 있는가였겠지요?
그렇게 위선자인 자신의 속내를 아기스 앞에서 훌훌 털어버릴 수 없다는 것
이스라엘과 더불어 나아가 싸워야 하는 그 위기 일발의 최후의 순간이 다가왔는데도
자신의 심중의 말을 꺼내지 못했던 다윗을 생각하노라면 나는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새
나도 심중의 말들과 하루 하루 동침하며 살다보니
내가 태중에서부터 성령님과 더불어 늘상 기도하는가운데 태어난 막내 아들이
벌써 21살이 되었네요
사람마다 자신의 가장 소원하는 바가 다양할터인데
나의 소원은 그 아들과 더불어 한 교회를 섬기며 아들의 영성을 지도해주는 것이였습니다
허나 나는 미끄러졌습니다
아들의 가장 예민한 사춘기시절부터 청년에 이를 때까지
나는 아들과 함께 다녔던 교회를 떠나
남편을 쫓아 개척교회를 다녀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 사이 아들의 신앙생활은 평탄치 않았습니다
엄마의 영혼의 체온이 떠난 그 교회에서
아들도 역시 그 교회에 대한 애정을 상실하게 된 것이지요
그렇다고 엄마 아빠가 다니는 먼 교회로 갈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아들은 주일이면 인터넷으로 예배를 봅니다
이 미끄러짐에 주원인이
그 누구도 그 어떠한 사건도 아닌
오직 나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나가야하는데
나는 아직 그럴정도로 순전치못해
그 통증이 남편과 시모님 그리고 목회자부부인 그들을 향하여 있으니
가장 아름다워야 할 교회 생활을
가장 곤란한 생활로 전락시켜버린 나 자신을 용서한다는게 왜 이리 어려운지요?
다윗!
그가 가장 힘들었던 일은 과연 무엇이였을까?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였을까?
자신도 자기를 어쩌지못해
그저 아기스앞에 연기 그 이상의 진정성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다윗!
그런 다윗 앞에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넓게 하사 편안케 하셨으니
내가 그 다윗의 하나님을 어찌 사모하지 않으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