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 24: 15,16) 그들이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
나이다.
(질문) 바울은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갖고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쓴다고 총독앞에서 조금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히
신앙고백을 했다. 나는 하나님을 믿은 반 평생동안 어머니 구원을 위해 기도
했지만 바울처럼 주눅들지 않고 또 양심에 거리낌이없이 어머니에게 복음을
전했나? 또 하나님께 구원에 대한 애통함으로 어머니를 위해 기도는 해봤는가?
내게는 누구나 어머니에게 그러하듯 내 심장처럼 사랑하는 어머니가 계시다.
늘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울컥해서 눈물 먼저 나온다. 그래서 심장같다고 얘기를
하고 싶다. 1940년 생이시니까 올해로 일흔 여섯되셨다. 불신자이시고 당신 아들이
예수님의 도를 따르는 것을 알고 절에 가는 것은 그만 두셨지만 마음속으로 부처를 모
시고 지금까지 살아오고 계시다.
6.25전쟁이 터지고 나서 외할아버지는 전재산을 잃은 후유증으로 화병으로 돌아가시고
큰 외삼촌 두 분은 의용군에 또 한 분은 자살하시어 어머니 나이 11세부터 외할머니와
함께 가족부양을 하셨다고 한다. 당연히 학교는 초교2년 중퇴이시고 어렵게 독학으로
한글을 떼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공부에 대한 한이 있었던것 같고 그 피가 내게 전이
된듯 하다. 내가 얼핏 어른들 귀동냥으로 듣기로는 어머니는 10대 후반에 동네 청년에게
욕을 당하셔서 나의 둘 째 형을 나으셨고, 전기 기술로 돈을 잘버는 그리고 외모가 번지르하지만 애 둘딸린 나의 아버지와 도망치듯 결혼하셨다고 한다. 내게는 이복 형제가 셋이 있었고 나는 아버지 재혼후 나은 첫아들인 것이다.
아버지는 외정시대 일본 기술자에게 전기 기술을 배워 돈을 잘버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당시 우리 외가집 삼촌들이 모두 아버지 문하생이었으니까. 돈을 잘벌었지만 버는 즉시
친구들과 노는 것에 돈을 탕진을 하여 가정에는 소홀하셨던것 같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주시는 넉넉지 못한 생활비로 어렵게 가정을 꾸려가셨다고 하며, 아버지는 끊임없이 바람을 피워 집안이 편안한 날이 없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어머니 무용담을 자주 듣곤 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아버지가 원인도 모를 불치병을 앓고 임종준비하라는 사형선고까지 받고 모두 낙심하고 있을 때 용하다는 관악산 꼭대기에 있는 절을 찾아가 새벽공양을 드려 아버지를 낫게 했다는 얘기는 우리 집안에서는 전설처럼 유명한 일화이다.
일 좋아하시고 친구 좋아시며 흥청망청 한 평생을 사시던 아버지는 내가 고1이 되었을 때 사업이 완전히 망해서 거의 폐인처럼 안방에 누워 살다시피 하셨다. 당연히 가정의 경제 문제는 어머니가 떠안게 되었고 자존심 강하고 남에게 아쉬운 얘기 못하시는 어머니는 우리의 생계를 위해 남의집 가정 도우미 일을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하셔야 했다.
나는 사실 공부에 그다지 취미도 없었고 재능도 없어 어머니 욕심으로 없는 형편에 과외도 받아봤지만, 학업에는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근데 고2되던 시기부터 조금씩 학업에 진전이 있었는데 그것은 어머니 때문이었다. 어머니의 유일한 위로는 나였었고 집안이 어려워져서 단칸방에 여섯 식구가 같이 살았지만 그래도 내가 공부하는 모습을 어머니가 보시면 어머니는 큰위로를 받으셨던것 같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집에 올 때즘되면 공부하는 척을 했고 그렇게 공부한 것이 어느 순간 불이 붙어 놀라울 정도로 학업에 진척을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 애들에게 했듯, 어머니의 유일한 희망은 내가 성공하여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학력고사 점수가 나왔는데 그 점수로는 서울소재 내가 원하는 과는 가기가 어려웠다. 내가 원하는 과를 갈려면 지방대학에를 가야했는데 우리 집안 형편에 지방대는 꿈도 못꿀 일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서울소재 중문과에 지원하게 되었고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성적이 커트라인이었고 그나마도 내신성적이 그 점수대에 비해 내가 월등히 높아 합격한 것이었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수고 덕분에 나를 포함한 내 밑의 두 동생까지도 무사히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서울의 2류대이지만 장학금을 받으며 우리 집안의 최초 대학생인 나를 어머니는 자랑스러워 하셨고 늘 친척 식구들에게 나의 자랑으로 당신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스스로 위로하셨던 것같다.
이런 어머니가 나로 인해 크게 실망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첫 번째가 기독교계 이단에 빠져 그곳에서 어머니의 이상적인 며느리상과는 거리가 먼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것과 중국에서 사업 실패하여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은 사건이다.
이 두가지 사건으로 나는 늘 어머니에게 빚진 마음으로 주눅이 들었고 어린 아이같이 그 분의 관심과 보호를 받아야 했다. 사실 지금까지 어머니 구원에 대해 내 자신의 연민으로 울어 본 것은 많지만 진정으로 어머니의 구원에 대해 애통함으로 주님께 간구한적은 없었다. 아니 실제로 할 수도 없었다. 생각을 아예 못했으니까.
나는 교회를 다니고 있었지만 실상은 어머니의 그늘아래서 그분의 가치관으로 살았다고
생각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어머니란 인본주의 종교에 의해 움직이는 꼭두각시같은 삶을 살아온 것이라고 단언해도 맞다고 생각한다.어머니는 인본주의 표상이시다. 자기 의도 강하시고 기독교인들의 잘못된 행태에 곱지않은 시선을 보이시며 너네들이나 잘하라고 늘 냉소적으로 복음에 대해 말하신다.
나의 회심과 날마다 큐티라는 어마어마한 선물로 나와 우리 가정을 변화시키는 일련의 각종 은혜는 나로부터 어머니라는 인본주의 심장을 떼어내는 새로운 피조물로 재탄생하는 과정이란 생각이 든다. 어머니란 나의 인본주의 심장이 떼어나간 이 빈공간을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리의 심장을 장착하기 위해 지금 무진 애를 쓰고 있다. 비록 어머니가 계신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지만 어머니 구원에 대한 진정성있는 애통함의 기도가 내 입에서 나오기 시작하였다. 구원의 서신을 통해 매 주 한 번이라도 마음을 담아 내가 만난 주님을 전해야겠다는 적용도 주님이 허락하셨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주님이 정하신 하늘 시간까지 하다보면 어머니도 마음으로 주님을 믿고 내가 맛보고 있는 천국을 누리며 사실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적용/결단)
1) 매주 한 번 내가 만난 주님을 어머니에게 편지글로 전하겠다.
2) 매일 하루에 한 번이라도 어머니 구원을 위해 기도하겠다.
(기도)
좋으신 주님. 저를 어머니의 품에서 떼어내어 진리의 품으로 옮겨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주님만이 저희 어머니와 저희 식구들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인본주의 원수 마귀에 사로잡혀 허덕이는 저희 가족들을 긍휼여겨 주시옵고 저의 족쇄를 풀어 주셨듯이 주님의 말씀으로 인본주의 감옥에 갇혀있는 저희 식구들을 하나하나 해방시켜 주소서. 그것을 위해 조급해 하지않고 주님이 제게 주신 멍애를 매고 그들을 살리기 위해 주님이 정해주신 영지에서 오늘도 열심히 주님의 마음을 의식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저와 주님을 모르는 무지한 저희 권속들을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