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3일 화요일
여호수아 12:1-24
“그 땅에서 쳐 죽인 왕들”
31명의 왕이 죽었다. 그들의 이름이 한 사람 한 사람 호명 될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승리의 함성과 함께 그들의 죽음의 의미를 되새겨야만 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적어도 그들은 적대적 관계가 아니었다. 만남조차도 없었는데 애증관계가 될 수 없었음에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전쟁이 시작되었고, 오늘 서른한 명의 가나안 땅의 왕들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었다. 처절한 죽음이었고, 헤렘이라고 명명된 심판이었다.
죽음의 기록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이 새겨진 것이다. 승리의 기록이기 이전에 실패한 자들을 죽음을 통해 말씀하고 계신다.
“똑바로 살아라!”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경고의 메시지이다. 심판이란 이다음이 없다는 말이다. 진멸이란 말 자체가 주는 참혹함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돌이킬 수 없는 끝을 의미한다.
한국교회의 부흥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렵다고들 한다.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온 지 100년 만에 1,000만 명이란 성도의 수를 자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금만 시각을 돌이켜보면 한국인 5,000만 명 중 4,000만 명이 쓰나미처럼 떠밀려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위험에 빠지지 않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구조 불이행을 저지른 사람을 처벌하는 법이다. 세상 사람들도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할 수 있음에도 외면하는 자들을 처벌하기 위해 선한 사마리아 법을 제도적으로 만들었다.
하물며 조금만 손을 내밀면 저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음에도 그냥 바라만 보고 있다면 이것은 크나큰 범죄이자 성도의 직무유기이다.
오늘 왕들을 향한 심판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다. 서른 한명의 이름 하나 하나가 오늘날 죽어가는 불신자들을 향한 경고이자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기록인 것이다.
또한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의 행렬을 보면서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내가 과연 제대로 믿는 자인 지, 먼저 나의 믿음을 의심해보아야 할 것이다. 한 달란트를 땅에 묻은 어리석은 종처럼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날, 울며 이를 가는 처절한 심판에 처해질 운명은 아닌지 돌아보아야한다.
왕들의 이름을 불려 질 때마다 아직도 주를 믿지 않는 불신 가족과 가까운 이웃들의 얼굴이 떠올라야 할 것이다. 저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야할 것이다. 어찌하든지 저들을 구원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강구해야할 것이다. 전도하는 현장에 이미 기다리고 계신 주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