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2월 12일 목요일
여호수아 5:10-15
“첫 유월절”
40년 전, 홍해를 건널 때와는 분명히 다른 세대였다. 그들은 광야생활을 통하여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님을 배웠으며, 반석에서 물을 마시면서 생명수 되신 주님을 체험하였다. 매일 공급하시는 만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자들임을 분명히 깨닫게 하셨다. 구름기둥과 불기둥 아래서 그들은 가야할 때와 서야 할 때를 분별하게 하셨고, 그들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배웠다. 이러한 반복된 훈련을 통해 요단을 향하여 담대히 걸어가는 믿음으로 자라게 하셨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서 지킨 유월절은 감격 그 자체였다. 요단을 마르게 하신 하나님의 자녀 됨을 확인하면서 맞은 첫 유월절이었다. 40년 만에 땅에 소산을 먹었다. 그러자 하늘에서 하루도 빼지 않고 그들의 진중에 내리던 만나가 그쳤다.
아이가 젖을 떼듯이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이다. 광야 40년의 세월이 걸음마를 위한 시기였다면 이제는 혼자서 걸어갈 것을 요청하신다.
부모의 품 안에서 아이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하지 않는다. 다만 보챌 뿐이다. 손자가 태어나고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랬다. 유아기를 지나 이제는 좀 더 성숙한 신앙을 요구하신다. 이제는 자신들이 씨를 뿌려야했다. 그리고 땀 흘리며 애쓰는 가꿈의 시간이 필요했다. 기다림이었다. 먹을 것을 위하여 땀 흘리는 노동이 필요했다. 아마도 그들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적응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루아침에 먹는 것이 바뀐다는 것은 상당한 문화적인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도 어김없이 무교병을 먹었다. 생활이 바뀌었지만 유월절의 의미는 고스란히 전수되어야만 했다.
복음도 시대를 따라 옷을 입는다. 불과 100년 전과 지금의 삶은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 상품을 팔 때에도 디자인과 광고가 생명인 시대를 살아간다. 본질은 변하지 않되 포장은 달라져야하는 이유이다.
복음이 문화의 옷을 입는다. 그 한 예로 교육관을 탁구장으로 개방한 일이다. 조금은 아쉬운 면이 있다면, 문만 열어놓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들어오는 입구에 주님의 말씀을 걸어놓는다든지 목사님의 설교집과 전도지 등을 비치한다면 그들에게 복음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될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은 교회가 그들에게 맛있는 차와 다과를 준비해서 대접한다면 교회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히 탁구라는 스포츠를 좋아해서 교회를 찾는 이들이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자연스럽게 복음의 문을 열고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