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턴을 하게 되면...
작성자명 [이효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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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6.13
한 지체가 오랜시간 공동체를 떠나 살다가
목장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교제의 끊어짐으로 인해
예배시간에도 기도를 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어젯밤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께로 이젠 돌아가겠노라고 그렇게 고백을 했습니다.
그 고백을 들으며 우리도 함께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들의 그 순간들을 생각하며 눈물이 났습니다.
아직 말씀이 양육이 잘 안되어 있는 그 지체는
이제 U턴을 하기로 하긴 했지만 그동안의 세월이 너무 길어 너무 갔기에
얼마나 달려야 할지 염려가 된다고 했습니다.
저도 그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이젠 세상의 삶은 아니긴 아닌데
문제는 돌이킨 삶을 살아가는 것도 더 걱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가야만 하는 것일까?
도대체 내 죄는 어디까지 파헤쳐 져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눈물로 회개하는 저를 짓눌렀던 것이 기억납니다.
아직도 내 가치관이 바뀌어진 것이 아니었기에
은혜가운데서도 나를 압박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지체에겐 내가 유턴하여 돌아선 그 자리에서
또 어딘가를 도달하기 위해 어디까지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선 그 자리가 바로 주님과 함께 하는 곳이라고 하긴 했지만
저의 말주변으로 설명이 되지도 않고
설명한다고 되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포도원의 늦게 온 품꾼의 비유도
가치관이 깨지지 않고는 도저히 이해가 안될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 다윗과 요나단의 이야기를 보면서
도저히 받아들여지지가 않아서 하나님께 묻고 또 물었습니다.
다윗의 믿음이 더 나은 것도 아닌데
왜 한사람은 다윗이고 한사람은 요나단이냐를 저의 교만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요나단이 믿음이라도 안좋으면 접어지겠는데 도대체가 요나단의 삶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 괜찮아 보이는 요나단이 사울을 아버지로 둔 죄로
하나님이 다윗의 대적을 치는 그 대상이 되는 것이 내 가치관으로 이해가 안되었던 것입니다.
8년전 그때 사무엘상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제게 이것을 깨닫는 기쁨을 기도의 응답으로 주셨는데
제가 하늘에 있는지 땅을 걷고 있는지 구별이 안될 정도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그때까지 해석이 안되었던
나는 왜 모태신앙으로 자라지 못해 이리도 깨지지 않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했던 것도
KAL사고때 믿음이 있는 이도 죽고 믿음이 없는 이도 살려주시는 그 뜻이 이해가 되어졌습니다.
이 땅의 가치관을 가지고 아무리 해석을 하려 해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 지체는 강한 공동체와 말씀양육이 있으니
그리 길게 유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요나단은 이미 다윗에게서 올 예수님을 보았을 것이고
자기가 바로 심판의 대상이며 지면에서 끊어질 인생임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요나단의 살 길은 예수님의 조상인 다윗에게서 인자를 구하는 길 뿐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이땅에서의 가치관으로 축복이라고 여기는 좀 더 재물을 가지고
좀 더 좋은 배우자, 좀 더 좋은 자녀등등 좀 더 좋은 것들을 취하든지
그와 다르게 삶의 결론으로 도무지 가진 것없이 초라하든지간에
유턴한 삶 그 자체에서는 어차피 차이가 없는 것임을 요나단은 알았을 것입니다.
다윗의 삶도 요나단의 삶도 차이가 없이 역할일 뿐이라는 것을...
그래서 내가 초라하게 죽어가는 역할이라 하더라도 상관이 없음을...
그래서 담대히 자기가 심판받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고
주님이 건져주실 것만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비교하고 시기할 필요가 없음을 아는
서로 마음이 연락하는 다윗들이 요나단들이 모인
이 공동체에 제가 속해 있음이 눈물나도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