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받으려고 해서 죄송합니다. 감추려고 해서 죄송합니다.
-본문: 사도행전4:32부터5:11
오늘 이 하루도 감사합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공동체를 형성하고 서로 자기것이라 하지도 않는 이 사람들은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은 사람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었습니다.(v.4:34)
소유물을 팔아 사도들 발 앞에 두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유독 이름이 거론된 레위지파사람 요셉이 등장하는데 이 사람도 여느 사람들처럼 밭을 팔아 사도들의 발앞에 둡니다. 사도들이 이 사람을 위로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4:36,37)
모두가 가난하지도 않았습니다. 살기에 넉넉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으니 나눠주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줄것만 있는 인생입니다.
-적용질문1 : 나는 나누는 사람인가? 받는 사람인가? 나누지 않는 것이 받으려고만 해서 그런 것은 아닌가?
-나눔
우리 집의 형편을 아는 분들은 내 자녀처럼 봄이와 예모를 아껴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당신 자녀들이 입던 옷이나 물건을 주셔서 받았었는데 참 많이 받았습니다. 그 때마다 줄것이 없어 너무 미안했는데 아내와 장모님은 호박죽을 해서 나누어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부족해서 교회에서 봉사활동도 하십니다.
한 편 저는 더 받고 싶은 욕심에 교회홈페이지에 들어가 아나바다를 수시로 본 적도 있었습니다. 필요한게 뭔지도 모르면서 뭔가 준다고 하면 다 받아오려했었습니다.
받으려고만 해서 나의 환경이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회개가 되어집니다
어제 교회에서 목장식구들과 먹을 것을 나누니 너무 좋았습니다.
-적용질문2
내가 감추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환경을 핑계삼아 아무도 모르게 지은죄를 감추고 있는지, 아내와 자녀가 저지른 죄를 보고 감추는 자인가? 정죄하는 자인가? 회개하는 자인가?
-나눔
오늘 공동체가 수고를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장사지낸는 수고를 합니다.
5:9절에 아나니아가 위로의아들 요셉을 시기하여 밭을 팔아 얼마를 감추고 얼마를 사도앞에 내놓고는 감춘 얼마때문에 책망받고 죽습니다. 젊은사람들(공동체)이 장사지내고오는 수고를 합니다. 또 삽비라도 책망을 받고 죽어 젊은사람들(공동체)이 장사를 지내는 수고를 합니다.
가족들의 죄 (장모님과 아내와 자녀)를 보고 회개는커녕 그러면 안되는데 라며 걱정만 한 적은 있었습니다. 방관하는 자세를 가졌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그 일을 수습하는 젊은사람들(5:6,10)처럼 수고하게 되는 일이 있기전에 회개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아내가 자녀가 감추려는 죄를 내 죄로 보고 회개함으로 아내와 자녀의 회개를 도와야 한다고 합니다. 가족 공동체의 감추는 죄는 스스로 드러내어 회개함으로 진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생일이어서 손위처남이 오셔서 에슐리를 갔습니다. 그곳을 아내도 아이들도 좋아 합니다. 우리 형편으로는 그곳에 자주 갈 형편이 안되기에 한 번 가면 너무들 좋아 합니다.
식사를 하다가 “어떤 아가씨들은 이런 곳에 오면 수저,포크,나이프를 가져간다더라” 했더니 아내가 “그 니은은 도둑(니은)야” 라고 합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다가 커피 코너를 보니 아이들 위해 둔 “네스퀵(물이나 우유에 타먹는)“이 꽂아있었습니다. 아내가 몇 개를 챙겨 아이 주머니에 넣는 것을 보았습니다. 칫 그건 훔쳐오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에 ”그렇게 가져가도되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나왔습니다.
오늘 아침 큐티가 가슴이 먹먹해지게 만듭니다. 이 내 죄를 보라고 하니 내가 회개할 것이 무엇인가? 묻게 됩니다. 나의 경제활동? 늘 회개해왔는데? 또? 왜? 계속 드러나는 이런 일들에 또 다시 내 죄를 물으시는 하나님이 짖꿎어보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아내와 자녀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먼저 회개함으로 회개를 도우라는 것이 인정이 됩니다. 잘 몰랐던 회개해야 할 것들을 이렇게 드러내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가정의 감추었던 여죄들을 드러내시어 생각나게 하시고 회개케하시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