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다리 걸치기
작성자명 [심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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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03.11
2005/03/11(금)
요14:22-31 <순도 100%의 예수사랑 >
오늘 본문은 어제의 본문과 계속 이어집니다. 가롯 유다가 아닌 유다가 예수께 여쭙습니다.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14:22) 예수의 대답이 이러합니다.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14:24) 예수의 대답이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14:26)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14:27)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다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여 함이라(중략)(14:28)
저는 어제 본문 묵상 말씀 가운데서 마지막 내용 중에 예수께서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14:21)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께서 자기 계명을 지켜 예수사랑을 보여주는 자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어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은 저에게 큰 격려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가롯인이 아닌 다른 유다가 이 문제에 대해 의문을 갖고 질문하였던 것입니다(14:22참조) 그런데 예수의 말씀은 그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해답을 주지 않고 또 한번 고도의 철학적/신학적인 방법으로 우리 주님 대답하십니다. 저는 주님의 대답을 살펴보았습니다. 또 한번 감격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주 예수의 말씀하심의 그 깊은 의미를 다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지 결과론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자기 말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자기 말을 지키는 자는 예수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사랑하는 자 다시 말하자면 예수의 말씀(言)을 사랑하는 자는 다시 말하면 예수의 말씀(言)을 지키는 자에게는 예수께서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론적으로 왜 예수가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우리의 삶 속에 주 예수가 살아 역사하지 않는 이유는 한 마디로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것은<예수사랑> 대신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누구든지 자기 자신의 뜻(言/계획)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ㅅㄱㅈ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해당되는 것이 보이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고자 하는 유혹을 받기 쉽습니다. 어떤 이는 노골적으로 그것이 보여 지고 어떤 이는 고단수라서 보통 사람들이 알 수 없는 방법으로 교묘하게 일을 추진합니다. 그렇게 여기에 생명을 걸고 하는 이유는 거기에 자신의 지위와 명예가 보장이 되고 인맥과 심지어 돈까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방법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에게는 우리 주 예수께서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14:22). 오 주 예수여 우리의 <예수사랑>이 이런 것과 관련됨을 오늘 이 아침 보여주심을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오 주여 명예도 구하고 재물도 탐하고 그리고 <예수사랑>을 동시에 할 수 없는 이 사실 한 가지를 보여 주시니 감사하옵니다. 주여 종의 예수사랑이 순도 100%의 <예수사랑>이 되도록 은혜 부어 주시옵소서. 그래서 주님을 날마다 <만나는> 이 한 가지 기쁨으로 만족하고자 합니다. 아니 이것보도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참으로 세상이 맛볼 수 없는 평안이옵니다(14:27)!!
주여 오늘 이 종이 본문말씀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주 예수님의 깊으신 뜻을 다시 한번 더 상고/상기하고자 합니다. 오늘 주님의 강론을 살펴 보건데 주님께서는 자신을 사랑하는 자 즉 자신의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자신을 나타내어주신다는 말씀에 이어 지난 번 말씀처럼 오늘 또 성자께서 성부와 하나 되심을 말씀하시고 또 성부와 우리와의 하나 되심을 언급하시고 계시는 것으로 사료(思料)되옵니다(14:24/14:23b.)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저의(底意)는 지난번 강론 때와 역시 흡사함을 이 종은 감지되옵니다. 주님 이종이 주님의 깊으신 뜻을 잘못 헤아렸을까 조심스럽게 묻사옵니다. 주님께서는 앞에서 많은 부분을 성삼위하나님의 하나되심에 있어서 성부와 성자의 하나되심과 그리고 우리와의 하나되심을 드러내셨지만 십자가의 죽으심을 앞두고 또 주님께서 성부께로 가실 때가 가까워지시면서 성령하나님과의 하나되심도 포함시키시는 주님의 철학적/신학적인 방법의 자기계시를 이 종이 조금 간파하였습니다(14:16-17). 오 성삼위 하나님의 하나되심이여! 오 성삼위하나님의 우리와의 하나되심이여!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14:26-27b) 주 하나님의 도는 참으로 깊사옵니다. 주께서는 성부와 성자와의 하나되심을 넘어서서 성삼위하나님의 하나되심을우리와의 하나되심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 부득불 주께서 성부로부터 오시어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다시 성부하나님께로 가시어야 하는데 제자들의 <예수사랑>의 수준이 아직 걸음마수준에 있었기에 성령의 성부와 성자와의 하나되심과 또 우리 모두와의 하나되심의 주님의 계획을 몰라 그들은 단지 주님이 안 계시는 것 자체를 두려워했습니다(14:28). 이제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을 우리의 주로 모시고 날마다 자신의 뜻과 계획을 포기하고 주님의 말씀하시는 뜻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을 향해서 늘 성령으로 기쁨과 평안으로 역사하심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주님 이제 세상 권세자들을 부러워하지도 또한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되었습니다(14:30). 이는 주께서 친히 우리에게 나타나서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나타내시기때문입니다!! 오 우리를 친히 돌보아주시기 때문이옵니다. 오 성삼위하나님의 하나되심이여 오 성삼위하나님의 우리와의 하나되심이여 오 성삼위하나님의 사랑의 공동체의 하나되심이여. 주여 우리의 목마름을 아시고 주께서 어제께 여기 있는 우리 종들에게 진정 예수사랑의 공동체를 갈구하는 자들의 모임을 허락하시었습니다. 우리의 하나됨을 통하여 주 예수여 더욱 당신이 나타나 주심으로 이로써 우리가큰 위로를 받고 성삼위하나님께는 말할 수 없는 영광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아멘 <하나되는 예수사랑의 공동체> 이 땅에 만개하기를 소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