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편에도 험한 바위 저편에도 험한 바위가
작성자명 [강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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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5.30
무리를 떨게 하는 리더쉽 없는 사울과 한명의 동역자만 있어도 담대히 싸워나가 승리를 하는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요나단을 묵상하면서, 저는 믿음 좋은 요나단도 좋지만 그저 병기를 든 소년정도라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의 리더이신 주님의 인도에 소년처럼 그저 따르기만 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한국에도 미국에도 법적으로 구속할 것이 전혀 없는 저희 부부인데, 결혼하고 2년동안 떨어져 있고 여러가지 부딛히고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잘 버티다가 결국 이제 가려하자 결사적으로 오지말라며 이혼하자는 남편을 주님께서는 이곳에 보내시어 나를 완전히! 밟으시며 순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하시는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자존심에 상처받아 울부짖을 때 주님께서는 성령의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자존심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당신의 뜻이 이뤄짐에 가만히 있을 수 없냐고..
이때 처음으로 주님께 제대로 된 서원을 했습니다.
주님때문에 당하는 고난이라면 감당하겠습니다. 당하겠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한 영혼이라도 살릴수 있고 약재료가 될 수 있다면 당하겠습니다.
그리고 본 말씀에 그것이 주님때문에 당하는 잠깐의 애매한 고난이라 말씀하시고 그것으로 기뻐하신다고, 주님께서 친히 말씀해 주셔서 무너지고 수치당한 상처받은 자존심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기뻤습니다.
사명없이 그저 살기위해 가려 했던 미국행이 일주일 남겨두고 이혼하자는 남편의 날벼락같은 외침에 대체 왜 이런 사건이 왔나? 말씀보면서도 무너지려 할 때, 말씀대로 어떠한 토도 달지않고 공동체의 중보에 힘으로 입다무는 적용을 해서 얻은 답이 가정 중수하자는 서로의 하나된 결심이었고, 전화넘어로 대성통곡하는 남편의 내려놓음의 울음 소리를 듣게 되어 주님께서 만지심에감사의 찬양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아직 되었다 함이 없는 저는 남편의 실직 상태와 건강이 걱정되면서도 오늘 나에게 주신 이편, 저편의 바위를 통해 진정한 믿음과 평강을 바라시는 주님에 은혜에 감격하였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듣다 보면 항상 이름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바위인데 이름이 있더라구요.
이편의 험한 바위는 보세스이고 저편의 바위는 세네라고요.
참 희한했습니다. 바위에 이름이 있잖아요. 성경에 기록되었으니 분면 이유가 있을텐데..무슨바위, 무슨바위 해서 관광용도 아닐텐데요..
근데 이름의 뜻을 알고나서 감격스러움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이곳 저곳의 가로막고 있는 현실의 바위가 내 발목을 잡으려 할때 주저 앉지 않게 하신 주님의 일하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사명지로 가기 위해 건너야할 험한 바위가 제게 있습니다.
믿음도 적은 제가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이 넘치는 시댁이 있는 미국으로 갑니다.
이편에도 저편에도. 막막했던 저 험한 바위가 결국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 주님의 도우심으로 빛을 발하고 꽃의 향기를 내뿜는 증거가 되리라 믿습니다.
믿음도 없고 사명도 없는 저를 붙드시고 흔드시고 순종하는 훈련을 시키셔서 보내심에도 절대로 평탄한 길로 보내시지 않음이 결국 주님께서 일하심을 확증하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방법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해결된 것이 전혀 없음에도 환경이 나아짐이 전혀 없음에도 오늘 이 말씀이 깨달아지는 감격의 은혜로 족히 삽니다.
주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