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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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5.30
2008-05-30(금) 사무엘상 14:1-23 ‘내 동생 ’
큐티는 하되, 남에게 보여준다는 건
참으로 거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곳을 찾을 때마다 ‘그만 두어야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가 두 가지 있는데
어떤 형제가 따끔하게 지적해준 얘기
묵상이 아닌 글쓰기에 중독 된 게 첫 번째 이유고
두 번째 이유는 내 동생 때문입니다.
발음으로는 요나단이자만 알파벳으로 읽으면 조나단
동생이 제 2의 고향으로 삼은 미국에서
자신의 아들에게 지어준 이름 조나단...
동생이 아들의 이름을 조나단이라고 지은 이유가
무의미한 삶을 거부했던, 튀는 갈매기 조나단 때문인지
하나님을 신뢰했던 인간 조나단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오늘 본문을 묵상할 때 동생이 생각났습니다.
참 제게 유감이 많았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보다 형을 사랑함을 잘 압니다.
그래서 동생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전화기 버튼만 누르면 언제라도 통화할 수 있지만
아마 한 번도 내가 먼저 전화하지 않은 건 너무 미안하기 때문입니다.
그 동생이 매일, 제 소식을 보는 곳이 이곳임을 알고부터
가능하면 신변잡기를 들고 이곳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내 동생이
사울의 아들 요나단을 닮은 점이 참 많음을 오늘 알았습니다.
단기필마로 적진에 뛰어든 요나단처럼
야밤에 멕시코와 미국을 가르는 어떤 강을 건너
낯선 땅에 정착하여 자신의 뜻을 이룬 점이 점이 그렇고
그 강을 건널 때나
그 후에 미국 땅에 정착해서 가정을 이루어
딸 아들 낳고 사는 지금까지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사는 점도 닮았는데
그 아비에 그 아들로 살지 않은 요나단이나
그 형에 그 동생으로 살지 않는 점은 더욱 닮았습니다.
형이 2불 지폐를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인편이 있을 때마다 보내주는 자상한 동생이
매일 이 곳에 들러 형의 소식을 보는 게 큰 낙이라 하니 제가 어찌...
일대일 양육 교사 훈련의 숙제로 시작했다가
중독이 되어버린 큐티에는 그런 이유가 있는데
그 중독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중독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의 일 분 일 초도 그 손길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중독
거룩한 중독이 있음을 오늘 알았습니다.
그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인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거북한 일이
거룩한 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