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8일 금요일
신명기 27:1-10
“언약의 기록”
출정식을 마쳤다. 그들은 가나안 땅을 접수 한 후, 할 일이 있었다. 돌비를 세우고 석회를 발라 그곳에 가감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해야만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밟은 후, 맨 처음 해야 할 일이었다. 돌을 세우고 지금까지 들은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 거듭해서 말씀하셨다. 했던 말 또 하셨다. 그 말씀을 이제는 돌에 새길 것을 명령하신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자나 깨나 말씀생각이시다.
“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
를 바를 것이며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
제를 드릴 것이며“ 신명기 27:4-6
그곳은 에발산이었다. 여호수아가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바로 이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하였다. 언약식을 체결하시는데 바로 에발산에서 이루어 진다. 저주가 선포될 땅에서 말씀이 돌비에 새겨지는 것이다.
골고다는 저주의 땅이었다. 그곳에 말씀이 새겨졌다. 바로 십자가이다.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 받은 자라고 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 나무 십자가에서 달리신 후, 소망의 자리로 바뀐 것이다. 사도요한은 인자가 광야에서 달렸던 놋뱀처럼 인자도 달려야하리라고 하셨다. 놋뱀을 바라본자만이 살아남았다. 십자가를 바라본 자만이 살아남는 나라, 하나님 나라이다.
에발산에서 드려진 번제단은 다듬지 않은 돌이었다. 쇠 연장을 대지 말라고 하셨다. 아무것도 대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구원을 위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으셨다. 주님의 십자가에 아무것도 첨가할 수 없다. 이것이 은혜이다.
우리 앞에는 늘 두 가지 길이 존재한다. 너무 쉬워서 외면 당하는 좁은 길이다. 그래서 찾는 이가 적다고 하였다. 늘 쫓기듯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만 될 것 같은 넓은 길을 사모하며 살아왔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서도 주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였다. 오만과 편견이었다. 불신이었다.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는 것이 바로 복음이다.
요즘 십자가를 머리에서 가슴으로 옮기고 있다. 지금까지 가슴에 있는 줄 알았었는데 가슴으로 십자가를 바라보니 주님께서 내 멍에를 함께 지고 계셨다.
오늘 나는 에발산에서 십자가를 지시는 주님을 만난다. 그곳에 새겨진 하나님 말씀을 읽는다. 그리고 오늘 나의 삶에 새겨진 주님을 만난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 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 고린도후서 3:3
하다하다 못해 누추한 내 삶 속에 들어오신 것이다. 임마누엘의 주님을 묵상하며 고개를 숙인다. 흐르는 눈물을 닦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