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9일 토요일
신명기 27:11-26
“저주”
저주와 축복은 바로 한끗차이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좁은 길과 넓은 길은 항상 내 앞에 갈림길로 서있다. 그 갈래길 앞에서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단어가 적나라하다는 것이다. 이 말씀 역시 가감없이 기록해야했다. 그에 앞서 선포와 아멘으로 화답하게 하신다. 그들이 외치는 소리는 메아리가 되어 그들에게 다시 돌아왔다. 그들의 마음을 두드리며 아멘으로 복창하며 마음에 새겼다.
그들은 외침을 들으면서 인생의 부패상을 똑똑히 바라보게 하셨다. 은밀한 죄를 큰 목소리로 외치고 듣게 하셨다. 그리고 돌 위에 새겼다.
이 신앙고백 위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서의 새출발을 하게 하셨다. 거듭난 백성이었고 40년간 광야에서 훈련받은 군사들이었다. 그들은 복 있는 자들이 되기 위해서 먼저 12가지의 죄를 멀리해야만 했다. 그 중에 4절에 걸쳐 성적인 타락을 경계하셨다.
가히 성문화가 극도록 타락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자유라는 인본주의 문화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할 당연한 규범에 대해서 적나라한 고백을 하게 하신다. 그들은 말할 때, 섬뜻함을 경험하였을 것이다.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은밀하게 행해지는 죄악들이 까발러졌다. 아무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감춰질 수 없음을 고백하게 하셨다. 모든 사람들이 듣고 말하게 함으로서 경계표를 세우신 것이다. 하나님의 성교육이셨다.
여섯지파는 에발산에 섰다. 다른 여섯지파는 그리심산에 섰다. 레위지파가 한쪽에서 외치면 다른 한 쪽에서 아멘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외쳤다. 모든 백성이 참여한 출정식이었다. 어린이부터 아른까지 모든 이스라엘 민족이 외치는 함성은 그들의 마음에 다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장엄한 출정식이었다. 죄가 고백되어지고 이어서 복이 선포된다. 우리는 이 두갈래 길에서 더 이상 망설여서는 안된다.
그 축복의 땅이었던 그리심산이 저주의 땅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사마리아인들이 그토록 바라보았던 그리심산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찾고 있는 한 사람이 바로 너’라고 지명하여 불러 내신다. 행로에 곤하여 도착한 수가성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이었다. 그녀는 남자에게서 인생의 해답을 찾으며 목말라하던 여인이었다.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현재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라.”고 하셨다.
자신의 부정함이 낯선 사내 앞에서 벌거벗겨지자 그녀는 물동이를 팽개치고 마을로 달려갔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정오에 물길러 나왔던 여인이었다. 그녀가 그토록 목말라하며 기다리던 분이 바로 코앞에 서있었다. 인생의 갈증을 해결하실 유일한 분이셨다. 반석이셨다.
오늘 우리는 골고다 우편 강도의 편에 설것인가? 아니면 왼편 강도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를 가늠해야한다. 모두가 못박으라고 외치는 넓은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찾는 이가 적은 인적이 드문 길을 선택할지를 결정해야한다. 진정한 복있는 자가 되기 위해서 시편 1편 말씀을 읽는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