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처럼 신앙은 없었지만 너무 모범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했었다. 가족들 사이에서 내역할에 충실했었다. 내가 대학을 가는 것이 우리 가정에서는 합한일이 아니였기에 직장생활을 선택했고 하나밖에 없는 딸로써 가정에서 어머니의 조력자로써의 역할을 다했다. 뒤늦게 이런 것을 알아주지 않았던 닫혀있는 가족의 마음에 부딪혀 끊임없이 외롭고 힘들다고 욥이 친구들에게 한것처럼 가족을 향해 악,악 거리고 소리를 치다가 결국 선택한 것이 서른에 대학진학이였다. 오기로 무엇인가 보여주리라 하고 간 대학에서 얼굴도 잘모르는 해병대 출신의 복학생으로부터 이유없는 스토킹을 4년을 당하면서 폭행과 도망을 다니며 공부를 해야 했다. 나에게 이런일이 도대체 왜 이러나는지 용납이 되지 않았고 죽고 싶었다. 목사님 말씀대로 너무 옳게 살려고 있는 힘을 다했기에 너무 죽고싶은 마음이 컸다. 세상에 내가 설자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정의는 사라졌고 나같은 사람은 아무도 관심도 두지 않는다 생각했다. 스토킹 사건이 형사소송으로까지 가게 되고 여성인권단체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으로 나의 사건을 먹이로 사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죽으려고 수면제를 사모으기 시작했었고 먹었다. 이틀이 지나서 깨어났는데 죽지 않았다. 그이후 다시 수면제를 사러가서 약사가 파리해 보이는 내 얼굴을 보고 함께 말씀을 읽어보자고 했고 마태복음을 읽으면서 가슴에 뜨거운 것이 올라와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이후 순복음 교회에 처음발을 들어 놓은 것이 첫신앙의 시작이였다. 욥기를 묵상하면서 욥처럼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기 위한 의인은 아니였지만 인간사회에서 비교적 높은 도덕가치를 갖고 있었던 나는 그당시 나의 고난을 되돌아보니 욥의 애통하는 마음이 한절한절 너무나 절실하게 와 닿는다. 욥의 친구들이 욥의 고난에 대해 닫힌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처럼 가족이 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어머님의 편애와 바뀌지 않는 생각을 대할때마다 욥처럼 숨이 막혀 악소리를 내었다. 예수님 믿기 전에는 어머님이 잘못한 것이니 어머니의 생각이 잘못되었다 생각하며 잘못을 이해시키려고 전혀 듣지 않는 어머니께 발악을 하는 것이다. 예수님 믿고 나서는 목사님 말씀처럼 사람에게 잘못해서가 아니라 예수님 믿는 내가 이것밖에 안되는 것이 좌절이 되고 낙망이 되었다. 그래서 또 울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살고 있지만 이렇게 말씀이 들리는 것이 축복이라 하시는 목사님 말씀에 100% 동감한다. 내가 고난가운데 힘이 들었던 것이 인과응보의 사고로 살아왔고 신앙생활도 그에 근거한 권선징악으로 하나님을 생각속에 가두어 놓았기에 이 가치관이 남도 판단하고 내가 고난에 직면하자 용납할수 없으니 스스로 목을 조이는 올무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였다. 막다른 절벽에서 주님을 만났지만 그때 왜 숨이 쉬어졌는지 이미 성령께서 내영 깊은 곳에 오셔서 내생각, 내가치관이 아닌 성령의 뜻이 지배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와 머리로 이해가 된다. 나의 고난을 통해 무너져야할 인과응보의 사고와 기복신앙이 무엇인지 깨달아 진다. 욥이 자신의 인생에 해답을 찾으려 애쓰고 애썼지만 결국 주님을 만난 것처럼 나또한 납득할수 없는 사건속에서 주님을 만나는 사건이 되었다. 여전히 무너져야할 기복적 신앙이 있기에 아직도 나에게 마음을 가리우고 있는 주위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긍휼히 여겨지고 애통으로 기도하게 되니 오늘도 오늘만큼 하나님은 내게 기적을 행하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