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6일 수요일
신명기 26:1-11
“드림과 나눔”
본문 열한 절에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무려 12번이나 등장한다. 모세는 잊어서는 안 될 하나님의 일하심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가나안에 들어가 첫 농사의 처음 수확물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다. 몇 주 전 추수감사절도 같은 의미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초태생을 좋아하실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가나안 정복 전쟁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처음으로 종자를 파종하였다. 싹이 나고 가을이 되자 열매가 익었다. 가나안 땅에서의 첫 수확의 기쁨을 하나님께 돌려드린 것이다. 그들의 고백에는 감사가 넘쳤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싶은 제사가 드려졌다. 오늘 그들의 고백 속에는 애굽에서의 고달팠던 기억이 배어있다. 종에서 자유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들은 곤고한 중에 조상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응답하셨다. 압제를 보셨다고 했다.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다. 그리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다.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한 일이라고는 부르짖은 것뿐이었다. 여기에 기도의 위대성이 있다. 기도하자 홍해가 갈라졌다. 기도하자 요단강이 갈라졌다. 때로는 원망까지도 응답하셨다. 물이 없다고 불평하였을 때,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셨다. 고기가 먹고 싶다고 보챌 때, 메추라기 떼를 진영이 파묻힐 정도로 허락하셨다. 우리를 막고 있는 어려움 역시 기도할 때, 갈라질 것이다.
그들의 감사의 기쁨 속에 잊지 말아야할 사람들이 있다. 레위인과 너희 가운데에 거류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 것을 명령하신다. 예배의 중요성과 연약한 자를 돌보는 것은 신앙의 두 바퀴 같은 것임을 가르치신다. 레위인과 우거하는 객의 공통점은 생산 능력이 없는 자라는 것이다. 경제력이 없는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드림과 나눔’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을 인하여 너는 레위인과 너의 중에 우거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신명기 26:11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부르짖어야만 한다. 그것이 내가 살 길이요.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이다. 그리고 우리는 날마다 고백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루하루, 한 발짝 한 발짝 나와 그리고 우리 가정을 인도하심을 바라보아야 한다. 첫 것을 받으시고 즐거워하신다. 나는 일부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는 나의 전부를 받으신다. 나는 적은 것을 드렸는데 전부를 내게 주셨다. 십자가이다. 사도바울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이다. 이것이 은혜이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린도전서 25:20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드리는 첫 곡식 단은 주님이셨다. 주님께서 이루신 구원을 깨닫는 것이다. 죽음의 홍해를 가르신 사건이요. 인생의 갈증에 목말라 하던 자들에게 생수가 되심을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한일은 아무것도 없다. 할 일 또한 없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하셨음을 고백하는 것이 우리의 찬송이다. 오직 영광만을 받으실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다.
오늘 나는 나의 첫 것을 드린다. ‘주님께서 하셨습니다.’라는 고백 속에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