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작성자명 [김근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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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5.04
1절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악독은 마음이 흉악하고 독살스러운 것이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큰 언니를 마구 때리고 욕을 해서 견딜 수 없어서 자살을 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가족을 전혀 돌보지 않으셨다.
엄마는 남편대신 돈을 벌고 남들에게 인정을 받아 도시로 나와 돈을 벌었는데, 당시의 유교적인 큰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시골에서 살 수밖에 없었고, 가세가 기울여지면서 6남매의 아이들을 혼자의 힘으로 키우기 위해 오직 생계에 매달리고, 남편의 무능과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폭력과 폭언 속에서 마음에 한이 쌓여 있으셨다.
자라면서 엄마가 무척이나 힘들면 쏟아냈던 그 폭언과 한 섞인 행동으로 인해 지금 내 모습 속에서도 엄마의 모습이 그대로 있고, 형제들의 모습 속에도 그대로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 형제들은 그 악독 속에서 살고 있는데, 누구하나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쥐약먹은 사람이 되어 때때로 불같이 화를 내고, 이내 정죄감에 빠진다..
마음은 서로 못 도와줘서 마음을 아파하면서도 말이다..
특히 사소한 것에서도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대상이 아들이었는데, 사소한 실수에도 컨디션이 좋지 못하면 그냥 넘어가질 못했고, 그로인해 아들은 엄마 앞에서 주눅이 들고 기를 펴지 못하니 자꾸 실수를 하게 되고 그러면서 속으로 나를 닮아 악독이 쌓여져 가고, 그것이 지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오늘 곰곰 생각해 보았다.
어디서부터인가? 반복해서 사건을 주시고, 똑같이 드러나는 현상인데..
내 속에 어렸을적에 가라앉아 있던 악독이 사건이 생기면 여지없이 올라와 온 가족들에게 악독을 뿌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다윗이 사울에게 좇겨다닐 때는 몰랐던 죄인이라는 정체성을 밧세바를 간음하고 우리아를 완전범죄로 죽이고 1년이 아무일 없이 지냈겠지만, 다윗은 얼마나 심판의 시간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역시 지금의 나도 심판의 시간이다.
그렇게 심판의 시간이었기에 나단이 와서 지적을 했을 때 죄가 없는 것이 아니라, 밧세바 사건을 통해서 가라앉아 있었던 죄를 보고
자기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보고 말이 없어졌는데..
사랑하는 압살롬이 반역을 해서 죽이려 오는데도 말없이 눈물의 기드론 시냇가를 건너는 다윗을 보며 나는 왜 이렇게 말이 많은가??
순식간에 폭발하는 사람은 쥐약을 먹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바로 나였다. 아들사건에서 유독 쥐약을 먹은 사람이 되어 얼마나 아들을 잡았는지 모른다...
아들을 잡고 나서 화살이 남편에게 쏟아졌다. 미웠다.
아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라고 일부러 일을 만들어도 싫어하고
오직 조기축구와 친구밖에 몰랐다. 친구들이 좋아해 주고, 조기축구회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거기서만 자기 정체성을 찾는지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아들이 무엇을 살 때만 아빠를 찾지! 아빠가 훈계라도 할라치면 뒤에서 욕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집에서는 늘 TV만 보고 있는 남편...
언제까지... 도대체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가?? 악독이 올라왔다.
오늘 참다참다 아들과 대화를 좀 하라고. 아이 상태를 좀 알아야 하는데,
왜? 관심이 없냐고...포악을 떨었다..
남편을 묵상해 보니,
시아버지에게 그 모습이 떠올랐다. 아버님도 방법을 몰랐기에 어머니와 평행선을 긋고, 늘 불평과 불만으로 며느리인 나에게 쏟아내고 위로를 받으려고 하신다. 시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미워하고 우리가 보는 데서는 그나마 식사를 차려드리는데, 가끔 불시에 가 보면 참 대접을 잘 받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아버님도 몰라서 그러셨고, 남편도 그런 아버지에게 배우지 못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아들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 줄 몰랐을 것이다.
남편이 몰라서 그랬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남편이 예수를 만나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내 속에 악독이 얼마나 주님을 만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지 알았다. 목사님이 그렇게 구원 때문에 섬기라고 했는데, 외식으로만 했지 진심이 없었다. 아니 맘은 있었지만, 나도 몰랐다.
방법은 오직 예수를 만나도록 구원 때문에 잘 죽어지고 썩어지고..
요셉의 뼈처럼 뼈가 되어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된다고 하니
저를 새롭게 창조하여 달라고 기도한다.
궤휼은 간사를 부리며 교묘하게 속임이고 속임수다.
목자를 하면서도 내 속에 궤휼이 가득했다. 나도 모르게 나를 속이는 나!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교회를 다닌다고 간사를 부리며 교묘하게 속임으로 의인인체로 구원 때문에 섬긴다고 명분을 교묘하게 내세웠다..
오늘 주님은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라고 명령하시는데,
순종할 수 있도록 성령님이 도와주셨으면 좋겠다.
2절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주님은 버리고 사모하라고 명령하신다.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 그것은 주님이다. 말씀이다.
어떤 분의 간증을 들으면서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셨는데, 얼마나 내가 사건을 통해
주님을 비방하고, 시기하고 외식을 했는지 보게 하셨다.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를 그냥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다.
사건을 통해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했던 불신을 보면서,
지금 이 시간 거듭남으로 주님의 젖을 사모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약속의 말씀으로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주님은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하신 것이다.
내 속에 악독과 궤휼과 간사와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불신의 말을 버릴 수 있도록 신령한 젖인 주님의 말씀을 주셨다.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저를 자라게 해 주시고
저를 새롭게 창조하여 주시길 간절히 기도한다.
하나님은 외모로 보시기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데,
남편이 안 바뀌고, 아들이 안 바뀌고, 딸이 변하지 않는 것이 바로 나 때문이고
하나님은 순전하셨다.
제 속에 저도 어찌할 수 없었던 악독과 궤휼을 보게 하신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목사님을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