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라
작성자명 [정현철]
댓글 0
날짜 2008.04.30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였으니 저는 선지자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마3:1~3)
<이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4~5)
요즈음 처제가 준 책인 『하나님 당신을 갈망합니다.』(토미테니저)를 은혜스럽게 읽고 있습니다.
“저자는 스스로 하나님을 좇는 사람이라 말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독자들에게 같이 하나님을 좇는 사람이 되기를 권하고 있다.
그야말로 무늬만 그리스도인에게 날마다 꾸준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라 한다.
10장에 걸친 가르침을 차근차근 읽어가다 보면 마치 저자에게 1:1로 대화를 듣는 듯한 느낌이 든다.“
요즈음 영적상태가 민민한데 시기적절하게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책을 접하게 되어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인터넷을 통하여 주님을 많이 알고 함께 하는 것처럼 묵상을 올리고 있지는 않은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였습니다.
사실 글을 올리는 것과 주님의 임재를 항상 느끼고 사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반복적으로 일을 하다보면 타성에 젖는 경우가 있는데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새로움과 변화들이 삶속에서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말씀묵상과 주님께 드린 예배의 중심에 주님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내 속에 있는 고집과 자만, 게으름 등을 회개합니다.
회개는 주님을 모시는 가장 지름길입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서 나의 죄를 고백함으로 거룩하신 주님을 섬기고 동행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8~9)
내가 교회를 다니고 선교회에서 일을 하고 묵상을 올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진정으로 주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소중함을 배웁니다.
먼저 나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정성을 드려 주님을 모시며 살고 더 나아가 삶속에서 성령과 전도의 열매들을 맺어나가는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자녀의 삶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자녀로 내가 살고 있는지에 대하여 나 자신을 비추어볼 때 항상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깨달음을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10~12)
주님은 심판주로 마지막 날에 오실 것입니다.
또한 성령으로 주님을 믿는 우리 모두와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전능하신 주님을 믿고 나아갑니다.
시골 출신이라 보리나 쌀을 추수할 때에 채로 흔들어 대면 알곡만 남고 쭉정이는 날아가 버리는 것을 종종 보아왔습니다.
쭉정이가 결국 추수할 때에 아무런 가치가 없듯이 주님을 믿지 않고 자신의 유익을 추구한 사람들의 삶도 헛된 일이 될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역사하심이 오늘도 우리들의 삶속에 충만하게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아침에 출근을 하여 묵상을 하고 있는데 동료 직원으로부터 근무할 때 악명이 높았던 사람이 글을 썼는데 한번 읽어보라기에 해피수원 뉴스에 나와 있는 글인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아름다운 이유』를 읽으면서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나왔습니다.
유행가 가사처럼 있을 때 잘했으면 얼마나 좋았으련만 너무나 공허한 글을 보면서 나도 이런 글을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실패를 허용하는 문화
조직의 성과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실패할 수 있는 자유, 실수할 수 있는 자유가 상당 부분 허용되어야 한다.
이는 단기적인 성과에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마음껏 실수할 수 있는 특정 그룹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문화라는 면에서 창조경영은 치명적인 실수나 실패가 아니라면 그런 경험들을 성공을 위한 불가피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조직 내부에 조성해야 가능한 일이다.
(공병호의 창조경영 / 공병호 저 / 21세기 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