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고기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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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4.27
2008-04-27(주일) 출애굽기 18:13-27 ‘가시고기’
부모의 마음은 가시고기를 닮았습니다.
알이 부화할 때까지 산소를 공급하며 적으로부터 지켜주다가
알에서 깨어나면 자신의 지친 몸을 자식들의 먹이로 내어주는...
자식들을 하나 되게 해주려고 먼 길을 달려와
사위에게 연륜과 경륜에서 우러나오는 충고를 하더니
잠시 맛본 권력에 취하지 않고 자식들 곁을 떠나는 이드로를 보며
14 년 전에 돌아가신 선친과 병상에 누워 계신 장인 어른과
그리고 가시고기가 생각났습니다.
15 년 전, 선친이 2 년 전에 발병한 위암 2 차 수술을 하시고
퇴원이 가까워질 무렵, 휠체어를 밀어달라고 하시며
그동안 베고 계시던 베개를 챙기실 때도 영문을 몰랐는데
수납 창구 앞에 가서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베개로만 알았던
둘둘 만 환자복 안에서 나온 100 만원 돈다발 여러개...
그 돈으로 수술비와 입원비를 계산하라시더니
남는 돈 백 몇 십만원을 내 손에 쥐어주셨습니다.
어제, 장인 어른께 감사드린다는 송해원 장로님의 나눔에
장인 어른을 찾아뵈어야겠다는 댓글을 달자마자
장인 어른이 쓰러지셨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내와 사둘러 대전으로 내려와
간호사들의 허락도 받지 않고 중환자실에 들어가니
뇌 경색으로 몸의 반이 마비되신 장인어른이
흐릿한 의식으로 사위를 알아보시고 옆에 있는 딸에게 하신 첫 마디는
‘박서방 밥 챙겨줘라’였습니다.
처음 만나던날 술먹다가 주먹다짐을 하며 싸운 큰 처남의 말을 듣고
결혼을 반대하던 장모님을 설득해서 결혼을 밀어주셨던 분이
선친과 동갑에 성품까지 똑 같으신 장인어른이십니다.
십 몇 년 전, 사업이 어려울 때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외손녀를 맡아 1 년을 키워주셨고
5 년 전, 사업이 망해서 포장마차를 시작했을 때
친가 친척들도 외면하는 사위를 위해
‘김교장네 큰 사위는 포장마차 한다네’
불을 보듯 뻔한, 세상 이목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인간극장 카메라도 마다하지 않으신 장인어른...
5월 초 불가의 휴일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영업을 쉬고 찾아 뵈려고 했는데
너무 일찍 자식들을 부르신 건
며칠 전부터 부쩍 피곤함을 호소하는 딸 자식을
잠시라도 쉬게 하시려는 뜻에서였나 봅니다.
그렇게 쉬라고 해도 쉬지 않던 아내가
서둘러 영업을 마치고 내려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정신 없이 자는 모습을 보며
자식들 좀 쉬라고 날 잡아 쓰러지신 것 아닐까 하는
방정맞고 철없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시술 후 24 시간이 되는 오늘 점심 때 쯤
생사 여부, 장애 정도가 판가름난다고 합니다.
팔십의 인생을 하나님의 은혜로 사셨으니
이 땅의 남은 연한도 온전히 하나님 뜻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세상에서 말하는 소위 성공한’이라는 단어를
‘사위’라는 죄인의 이름 앞에 붙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그 연한을 조금만이라도 늘려주시기를
저의 아버지, 장인어른의 아버지 하나님께 간절히 빕니다.
연륜과 경륜
언제부터인가 늘어가는 나이테가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흰머리가 경륜의 상징처럼 보였는데
막상 내 머리에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니
연륜이 꼭 경륜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궁에서 쌓은 학식과 팔십 해를 넘긴 세상의 이력에다
하나님으로부터 위임 받은 권능까지 겸비했으니
행정의 경륜으로는 모세를 따를 자가 없어 보이는데
이방의 제사장 이드로의 눈에는 모세의 부족함이 보입니다.
‘그대의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
사위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하며
완곡한 표현으로, 더 좋은 방법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이드로의 제안은 상식적이고 당연한 행정 시스템으로 보이지만
당시의 사회 구조나 지식수준으로 보면 대단한 아이디어임에 틀림없습니다.
팔십 넘은 사위, 그것도 하나님의 권능을 위임받은
민족의 지도자를 능가하는 이방 제사장, 이드로의 경륜...
그건, 연륜에서 우러나온 삶의 지혜라 생각됩니다.
모세의 됨됨이를 알아보고 사위 삼더니
이별을 고할 때 말없이 보내주었고
친정으로 돌아온 딸자식과 외손자들을 보살피다가
때를 알아 가족을 하나 되게 해준 이드로의 연륜이 돋보이는 대목인데
사위의 전도에 마음을 열어, 자신이 섬기던 신을 버리고
진정 위대하신 분이 누구인지 단 번에 알아보았을 뿐만 아니라
민족의 지도자에게 효율적인 행정의 노우하우까지 전수하는 이드로는
진정 연륜과 경륜을 함께 갖춘 사람,
쌓이는 연륜 위에 경륜까지 풍부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장인을 존경하여 그 뜻을 받드는 모세의 성품도
고난으로 점철된 연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0만 백성의 정점에 있는 최고 권력자를 움직일 수 있는 그가
가족을 하나 되게 해준 자신의 소임을 마치고 미련 없이 떠납니다.
잠시 맛 본 권력에 취하지 않고
나설 때와 떠날 때를 아는 이드로의 지혜야말로
연륜과 함께 풍부해진 경륜의 산물이라 생각됩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나이테가 늘어갈 때마다 경륜이 풍부해지는 사람
그 연륜과 경륜의 바탕 위에
재덕을 겸비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