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아닌 만나가
작성자명 [김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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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4.24
오늘 묵상말씀은 출애굽기 16잘 16-36절,
하나님이 아닌 만나가..를 묵상한다.
광야 사십년 동안 매일같이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신 하나님.
하루에 하루치만 거두도록 하신 하나님.
한 사람이 매일 한 오멜씩 거두도록 허락하신 하나님.
거둔 한 오멜이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게 하신 하나님.
오늘 본문에서 그런 하나님을 본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아닌 만나를 의지하려했다.
생명을 주는 분이 하나님이심에도 그들은 만나가 생명을 주는 것인 양 오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욕심을 부렸다.
한 오멜보다 더 거두려고 했고,
하루에 이틀치도 거두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때 영락없이 썩고 벌레가 났다.
더 거둔 만나에 썩고 벌레가 나게 하신 하나님.
그들의 욕심과 탐심을 경계하게 하신 하나님이시다.
만나에 생명이 있는게 아니었다.
만나를 주신 하나님, 그분께 생명이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그들은 만나에 생명이 있는줄 알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만나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만나는 수고의 대가가 아닌데,
만나는 선물인데,
만나는 내 힘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것인데,
그걸 몰랐다. 그리고 욕심을 부렸다.
.
.
어디 이스라엘만 탓하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 만나, 물질에 대한 욕심때문에 수없이 넘어지곤 한다.
만나에 얼마나 목숨을 거는지 모른다.
물질로 사는 것이 아닌데,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인데,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닌데,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 그 선물로 사는 것인데 말이다.
오늘 하나님은 보여주신다.
욕심의 끝은 썩어짐과 벌레라고,
욕심의 끝은 결코 생명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신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사람들이다.
욕심을 부리지 않는 사람,
만나에 생명이 있지 않음을 아는 사람,
하나님이 아닌 만나가 아니라, 만나가 아닌 하나님에게 생명이 있음을 아는 지혜로운 사람,
그런 사람들이다.
그래서 오늘도 아버지를 부른다.
그분의 이름 앞에 고개를 숙인다.
이 하루도,
만나가 아닌 하나님께 올인하는 하루가 되게 해달라고 또 간절히 기도드리는 목욜의 맑은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