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
작성자명 [김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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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4.23
오늘 출애굽기 16장 1-15절에서 원망 을 묵상한다.
마라의 쓴물을 통과하여 엘림의 오아시스를 경험했던 그들.
하지만 그 기쁨도 잠깐이었다.
이번에는 물문제가 아니었다.
물이 채워진 그들은 이제 떡과 고기를 요구했다.
떡과 고기가 없는 광야에서 그들은 또 모세를 원망했다.
모세를 원망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었다.
하나를 주면 또 다른 하나를 요구하고,
그게 없으면 금방 원망하고 불평하며 돌을 던지는,
어린애 수준의 이스라엘앞에서 모세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은 만나와 메추라기의 은혜를 베푸신다.
만나와 메추라기는 공짜로 얻는 은혜다.
매일매일 하늘에서 비같이 내려주시는 양식, 광야에서 그들은 노력과 수고 없이 일용할 양식의 은혜를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가 없었다.
본문 어디를 봐도 매일같이 내려주시는 양식에 대해 그들이 감사했다는 구절이 한마디도 없다.
원망꾼이기 때문이다.
그저 원망과 불평, 불만에 익숙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원망거리만 찾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는 당연한 것이었지 더 이상 감사할 거리가 못되었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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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다.
원망하는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다.
원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에겐 아무리 감사할 거리를 주어도 눈에 차지 않는다.
그 또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마음이 잔뜩 높아진 까닭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지은 죄는 모두 네가지.
우상숭배하는 자, 간음하는 죄,그리고 주를 시험하는 죄와 원망하는 죄였다.(고전 10장)
그들은 광야 40년 동안 이런 죄를 지었다.
이런 죄만 지었지 조금도 감사할 줄을 몰랐다.
그때문에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 외에는 광야1세대는 모두 광야에서 진멸을 당하고 말았다.
만나와 메추라기가 문제가 아니다.
매일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공으로 받으면서도 그렇게 원망에 빠질 수 있다.
그때 가나안을 얻지 못한다는 것,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
원망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새겨본다.
오늘도 하루가 밝았다.
눈앞의 문제, 만나와 메추라기 때문에 원망을 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내 속의 하나님, 성령 하나님께서 그렇게 도와달라고 또 그분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창밖에는 봄비가 부슬부슬 나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