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양은 달라도 무게는 같은 고난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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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4.15
2008-04-15(화) 출애굽기 12:21-36 ‘모양은 달라도 무게는 같은 고난’
처음 만나는 사람도, 교회에서 성도로 만날 때 어색함이 덜한 건
만나서 나눌 소재가 분명해서 대화가 매끄럽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처음부터 형제, 자매라 부를 수 있으니
말씀 안에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편한 일인지 모릅니다.
거기다 자신의 고난에 죄까지 오픈하면
이제 유전자까지 같은 한 아버지 자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경우, 죄의 오픈은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고난에 대해서는 작은 약재료라도 있어 대화를 풀기가 쉽습니다.
지난 주 목장에 새로 온 지체와 나눈, 고난에 대한 대화는
고난의 총량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각자 가진 고난의 총량은 똑 같다는 말을 해주었는데
주일 저녁, 누님과 식사를 하면서 같은 말로 위로를 받았습니다.
모양은 달라도 고난의 무게는 똑 같다는...
누구나 절대치의 고난을 갖고 있지만
각자 반응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난을 고난으로 보고 체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고난을 통해 자신의 죄를 보고 회개하는 중에
작은 고난에도 뜻이 있음을
고난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어
결국 고난이 축복임을 깨닫는 사람도 있고
고난 앞에서 더 강퍅해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고난 앞에 고개 숙이고 자신의 무능함을 고백함으로써
하님의 은혜가 임하는 사람이 있는데
전자는 본문의 바로와 같은 사람이고
후자는 애굽 백성들의 경우라고 생각됩니다.
바로는 끝까지 강퍅하여 자신이 복 받기만을 바라지만
애굽 백성은 노예로 부리던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풉니다.
그 마음이 자발적인 것이든 여호와의 강권에 의한 것이든
그들이 내 놓은 패물은, 훗날 성막 건축의 재원으로 귀하게 쓰이니
귀한 재물을 내놓은 손길에 대해서는
여호와의 긍휼히 여기심의 은혜가 임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장자와 생축을 잃기 전에도 수많은 고난을 경험한 그들의 경우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꼴인데
각자의 살아온 행실은 어떠했는지 몰라도
하나님의 은혜로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되었으니
그들의 고난은 결국 축복의 사건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난이 복으로 변하려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으로 백성에게 은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