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9일 화요일
신명기 1:34-46
“순종의 타이밍”
순종이란 무엇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본문이다. 자신들을 위하여 열두 정탐꾼을 보낼 때부터 첫 단추가 잘못 꿰진 것이다. 내가 하나님 편에 설 때, 승리가 보장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하나님을 내편으로 만들려는 우를 범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신다는 이 평범한 진리를 너무도 자주 놓치고 살아간다.
그들은 정탐꾼의 이야기를 듣고는 실망을 넘어서 절망에 빠진다. 그들의 눈에는 아낙 자손이 보였다. 그리고 원망으로 이어졌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생들의 슬픈 자화상을 본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희망의 싹을 남겨놓으셨다. 여호수아와 갈렙이었다. 정탐꾼의 일원이었던 그들 역시 아낙자손을 보았다. 열 명이 순간 잃어버린 하나님을 그들은 잊지 않았다. 그동안 함께 하셨던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자신들의 무능함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었다.
원망도 하면 습관이 된다. 물에 에워싸여 홍해를 건넜다. 평생을 잊지 말아야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았지만 광야에서 목이 마르자 그들은 원망하였다. 하나님을 찬양한 그 입술에 침이 마르기도 전에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40년간 광야에서 모진 고생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을 품에 안으시고 함께 고초를 겪으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모를 때가 너무나 많다. 애굽에서의 400년을 기다리셨고 앞으로도 40년을 기다리셔야 하는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초대교회 박해가 시작될 때, 많은 사람들이 사자의 밥이 되고 불에 태워지는 순교의 현장에서 그들의 고통과 고난만을 생각했다. 어찌하여 침묵하고 계시는가?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을 향하여 말씀하셨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사울이 살기등등하여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했을 때였다. 예수 믿는 자들을 향한 박해가 예수님 자신을 향한 박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 오늘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께서는 나의 고난의 현장에 함께 하신다. 나보다 더 아파하시는 분이시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은 두 번의 불순종을 하게 된다. 올라가라고 했을 때, 그들은 순종하지 않고 원망하였다. 또한, 가지 말라고 했을 때, 오히려 거리낌 없이 올라갔다. 그들은 여지없이 실패하였고 통곡하였다. 또 한 번, 불순종의 길을 걸어간 것이다.
순종은 타이밍이다. 예전의 한 회사의 카피가 떠오른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상품을 고를 때에도 신중해야함을 이처럼 광고하고 있다. 나는 이 말을 이렇게 바꿔본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아니 영원을 좌우한다.‘
인생의 길에서 만나는 어려움을 우리는 어떠한 태도로 만날 것인가? 그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그리고 엎드리는 것이다. 가라고 하실 때, 가는 것이다. 멈추라고 하실 때, 멈추는 것이다. 이것은 거저 얻어지는 삶이 아니다.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만들어 지는 것이다. 그들은 이 일을 위해 앞으로 40년간 광야사관학교에서 훈련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